기다림/조병화 기다림 /조병화 기다리는 게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비밀인가 가쁘게 목 타게 살아가는 나날을 이어주는 숨은 지하수가 아닌가 먼 곳에서 아물아물 가물거리며 다가오는 듯한 기별 같은 거, 소식 같은 거 기다리는 게 있다는 건 얼마나 아련스러운 위안이랴 사방천지 모두 차단된 거 .. **시의 나라 2012.09.26
대추 한 알/정석주 대추 한 알 /정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시의 나라 2012.09.24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윤동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 **시의 나라 2012.09.21
소중한 만남을 위하여/나태주 소중한 만남을 위하여 /나태주 옆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따뜻합니다 그대 숨소리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굳이 이름을 말씀해 주실 것도 없습니다 주소도 알려주실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굳이 나의 이름을 알려하지를 마십시오 주소를 묻지도 마십시오 이름 없이 주소 없이 이냥.. **시의 나라 2012.09.21
순수의 노래/블레이크 순수의 노래 /블레이크 모래 앞에서 세계를, 들꽃에서 하늘을 본다. 너의 손바닥에 무한을, 시간에 영원을 잡는다. 밤을 없애려 밤에 태어난 이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우리는 거짓을 믿게 되리. 영혼이 빛의 둘레에서 잠자는 때에 신은 나타나신다. 밤을 사는 가난한 영혼에는 빛으로. 낮.. **시의 나라 2012.09.20
멀게도 깊게도 아닌/프로스트 멀게도 깊게도 아닌 /프로스트 사람들은 백사장에 앉아 모두 한 곳을 바라본다. 육지에 등을 돌리고 그들은 온종일 바다를 바라본다. 선체를 줄곧 세우고 배 한 척이 지나간다. 물 먹은 모래땅이 유리처럼 서 있는 갈매기를 되비친다. 육지는 보다 변화가 많으리라. 하지만 진실이 어디 있.. **시의 나라 2012.09.20
울기는 쉽지/루이스 후른베르크 울기는 쉽지 /루이스 후른베르크 눈물을 흘리기야 날아서 달아나는 시간처럼 쉽지. 하지만 웃기는 어려운 것, 찢어지는 가슴속에 웃음을 짓고 이를 꼭 악물고 웃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시의 나라 2012.09.13
나는 슬픔의 강은 건널 수 있어요/디킨슨 나는 슬픔의 강은 건널 수 있어요 /디킨슨 나는 슬픔의 강은 건널 수 있어오. 가슴까지 차올라도 익숙하거든요. 하지만 기쁨이 살짝만 날 건드리면 발이 휘청거려 그만 넘어집니다, 취해서. 조약돌도 웃겠지만 맛 본 적 없는 새 술이니까요. 그래서 그런 것뿐입니다. 힘이란 오히려 아픔, .. **시의 나라 2012.09.10
귀향/헤르만 헤세 귀향 /헤르만 헤세 나는 이미 오랫동안 타향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지난날의 무거운 짐 속에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가는 곳마다 넋을 가라앉혀 주는 것을 찾았습니다. 이제 훨씬 진정됐습니다. 그러나 새로이 또 고통을 원하고 있습니다. 오십시오, 낯익은 고통들이여 나.. **시의 나라 2012.09.10
구월/헤르만 헤세 구월 /헤르만 헤세 뜰이 슬퍼합니다. 차디찬 빗방울이 꽃 속에 떨어집니다. 여름이 그의 마지막을 향해서 조용히 몸서리칩니다. 단풍진 나뭇잎이 뚝뚝 떨어집니다. 높은 아카시아나무에서 떨어집니다. 여름은 놀라, 피곤하게 죽어가는 뜰의 꿈속에서 미소를 띱니다. 오랫동안 장미 곁에.. **시의 나라 2012.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