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트 53
/셰익스피어
온갖 그림자들이 당신께 모여드니
당신의 실체는 무엇이며 당신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모든 존재는 오직 한 그림자만 소유하고
당신도 하나의 존재인데 온갖 그림자를 빌려 주시네.
애도니스를 묘사해 봐도 그 모습은
당신을 억지로 흉내낸 것뿐.
헬렌의 낯에 온갖 화장을 해 봐도
당신이 그리스 옷 입은 모습 다시 그린 것.
한 해의 봄과 풍성한 수확을 이야기해도
당신 용모의 그림자를 보여 주고
당신의 풍부함을 나타 낼 뿐이어요.
모든 복된 형상에서 당신을 보게 되어요.
어떤 아름다운 모습도 다 조금씩 당신을 닮았어요.
하지만 당신의 변함없는 마음씨야 누가 닮겠어요?
解 * 플라톤에 의하면 모든 사물의 실체는 각기 단 하나이고,
그림자는 그 사물의 수만큼 각양 각색이다. 시인은 님이 어떤 실체를 가졌기에
그를 닮은 그림자를 무수히 가지고 있는지 놀라와한다.
좋은 것은 모두 그를 닮은 그림자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애도니스는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가 미칠 듯 사랑했던 미남 청년이었으나,
시인은 그도 님의 흉내, 즉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고대의 최고 미인 헬렌도 님의 그리스 의상을 걸친 그림(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꽃피는 봄, 결실의 가을도 다 님의 면모를 띤다.
다만 님의 충실한 마음만은 세상에 유례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님은 변덕스러웠으니 그에 대한 비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