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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글

현명한 아이를 만드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헬렌 S. 정

샬롬이 2015. 5. 15. 23:56

 

 

 

현명한 아이를 만드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

 

 

 

/헬렌 S. 정

 

 

 

 

1980년대 초, 인기리에 방영됐던 외하 시리즈

<하버드대의 공부벌레들>을 기억하는가?

무시무시한 킹스필드 교수와 천재법학도 하트, 그리고 그의 애인이며

킹스필드 교수의 딸인 수잔 등, 그야말로 공부벌레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하버드대 학생들이 코피 터지게,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모습을 그린 드라마였다.

여기서 킹스필드 교수는 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쩔쩔매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런 킹스필드 교수의 집요한 문답식 수업방법은

비단 드라마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이 문답법은 하버드 로스쿨만의 독특한 수업방식으로서

1870년에 초대 학장으로 취임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랑델이 고안해낸 것이다.

랑델은 소크라테스가 타인과의 문답을 통해

상대의 무지를 자각하게 하고 그것으로부터 탐구를 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썼던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응용하여 '랑델 수업법'을 만들어냈다.

 

하버드대 로스쿨의 교수들은 이 수업법에 따라

학생들에게 판례를 소재로 계속 질문을 던져서

학생 스스로 법적 사고력을 키우도록 만든다.

해단 판례를 철저히 분석하고 수업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금방 밑천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자신의 답변이 논리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과 창피함에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이 방식은 1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데
다만 "너무 가혹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압박 강도를 늦추는 등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과거에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10분이 넘게 침묵이 이어지는 일들이 빈번했지만

지금은 답변 기회를 바로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물고기를 잡아서 주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야말로 물고기를 잡아서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교육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그 효용성이 입증되어 하버드 로스쿨을 넘어

다양한 교육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더욱이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를 시도해야할지 갈팡질팡하는 부모들에게

소크라테스식 문답법만큼 효과적이며

 생활 속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밥법도 드물다는 게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말이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다른 말로 '산파술'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유인즉 산파라는 것이 아이를 낳을 때

옆에서 도와주는 할머니를 뜻하는 말로,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는 걸 도와주려고 한 대화법을

출산 과정에 비유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소크라테스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의 대화를 이끌어 나갔을까?

그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서 소크라테스식 산파술을

우리 아이에게도 적용해보자.

 

여는 때와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는

아폴론 신전 근처를 배회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그러던 중 똑똑해 보이는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청년을 불러 세우고 대화를 시도한다.

첫 마디는 주로 "자네 오늘 기분이 어떻나?"

또는 "인생이 무엇인가?" 같은 일반적인 질문들이었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무르익어 가면 그때 소크라테스는

다시 주제가 될 만한 어려운 질문을 꺼내놓는다.

 

"민중이란 누구인가?"

청년이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러자 다시 소크라테스가 묻는다.

"가난한 사람들이면 어떤 이들이지?"

"돈에 쪼들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소크라테스가 다시 물었다.

"부자들도 대개 돈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면 부자도 가난한 사람이 아닐까?"

청년이 슬슬 당황하기 시작한다.

"글쎄....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크라테스는 이제 본론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민중이 주체가 된다' 하는 민주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의 정치체제인가, 부자들의 정치체제인가?"

청년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내쉬고 만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평생을 걸쳐 즐겨했던 산파술의 한 예이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당연하다고 믿고 여겼던 논리가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모순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문답법을 통해 깨닫게 해 주었다.

 

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소크라테스가 한번은 미남으로 명성을 날리던

 친구 크리토불루스에게 미남경연대회를 제안했다.

청중들 앞에서 누가 더 미남인지에 관해 토론을 한 후,

투표로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소크라테스는 지혜로선 그리스에서 으뜸이었지만,

생김새는 무척이나 추남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먼저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만 발견되는지,

아니면 동물 혹은 다른 것에게서도 볼 수 있는가?"

크리토볼루스가 대답했다.

"그렇다. 말, 돼지 등 무엇이라도,"

"무엇을 아름답다고 하는가?"

소크라테스의 질문이 이어졌다.

"자기의 기능을 잘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거나,

우리의 필요에 잘 맞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야."

크리토불루스의 답변에 소크라테스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눈이 필요한 이유는 뭐냐?"

"보기 위한 것이야."

"그러면 말 할 것도 없이, 내 눈이 네 눈보다 이쁘다!"

소크라테스의 대답에 미남자 크리토불루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어째서?"

"내 눈은 튀어 나와 4방을 잘 볼 수 있다."
그러자 크리토불루스가 지지않고 대답했다.

"그러면 소크라테스 네 눈보다는 게의 눈이 더 이쁘겠군."

"물론이지, 네 눈도 게 눈보다 못해!"

 

소크라테스와 크리토불루스의 문답은

눈으로 시작해서 코, 입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결국 돼지나 당나귀가

그들보다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미에 대한 통념을

바로잡기 위해 문답법을 쓴 것이다.

 

이런 식의 문답법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도

 매우 효과적인 대화방법이 될 수 있다.

부모라고 해서 우격다짐으로 아이를 설득하려고 하면

아이의 논리적인 사고를 해칠 뿐만 아니라

 아이로 하여금 그릇된 반발심만 갖게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아이가 아무리 엉뚱한 질문을 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소크라테스처럼 되물어라. 계속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아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된다.

요즘은 웬만한 궁금증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서

얼마든지 빠른 시간 안에 답을 찾아낼 수 있다.

 

부모가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해줘야하는 일은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게끔 끊임없이 질문을 주고받는

말상대가 되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이는 어느새 부모가 자신을 대화상대로 생각하고

 자신을 인정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에 차게 될 것이고,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또한 쑥쑥 키워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