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탄식
/김경진 목사
그렇게 놀랄 수가 없었다. 뭔가 옆구리를 콱 쑤셨다.
창살 사이로 동네 개구쟁이가 작대기로 푹 쑤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곤 고단하다 싶었던 그 사이에 잠이 들었던가 보다.
그런데 하필 요놈의 개구쟁이가 작대기로 쑤실 줄이야.
젊었을 때는 어지간한 아픔고 쉽게 견뎠지만
나이가 들고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밤잠을 설치곤 하는데
이렇게 한 번 육신에 충격을 받고 나면
며칠간은 온몸이 결리는 것이 늙은 탓인가?
놀란 호랑이를 보고 개구쟁이가 함께 온 아버지를 향해
"아빠, 호랑이가 늙고 힘없이 자빠진걸 보니
꼭 집에 있는 우리집 고양이같애" 하는데 눈에 불이 확 일어났다.
'뭐이? 이 호랑이를 보고 고양이같다구?
그래 이놈아, 당장에 우리 문만 열어봐!
고양이가 뭔지 호랑이가 뭔지 당장에 가르쳐 줄테니깐 말이야' 하는데
호랑이의 빠진 앞니로 헛김이 푹- 하고 나왔다.
잡혀 오기 전 그렇게 신나게 뛰어 놀던 시베리아 벌판이
눈에 아슴푸레하게 들어왔다.
그래도 한때는 시커스단에서 재주를 기똥차게 피운다고
스타로서의 대접도 받았는데 이 동물원에 팔려 온 뒤론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고 오늘에는 고양이 취급을 받아?
화가난 호랑이가 개구쟁이를 보고 으앙- 하고
고함을 지르는데 녀석은 놀래지도 않는다. 늙지를 말아야지.
<베르도 묵상>
나이를 먹는 일은 보다 큰 인내와
보다 강한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도록 도전합니다.
그것은 열렬한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기대 속에서 인내를 가지고 기다린다는 것이
더 쉬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일상적인 생활 방식에 안주하려고 하며,
"응 그래, 그것은 내가 다 본거야. 해 아래 새 것이란 없는 거야.....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살면,
우리의 생명은 창조적인 긴장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냉소적으로 되거나, 자기 만족에 빠지거나,
또는 단순히 지루해질 뿐입니다.
<말씀의 조명>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브리서 12:1)
'**寓話集'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을 찾아서/김경진 목사 (0) | 2015.05.20 |
---|---|
오래오래 산다는 것/김경진 목사 (0) | 2015.05.19 |
만물의 영장/김경진 목사 (0) | 2015.04.23 |
이유도 많지 /김경진 목사 (0) | 2015.04.22 |
날아가 버린 행복/김경진 목사 (0) | 2015.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