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孤獨)
/白石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휘파람 호이호이 불며
교외(郊外)로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문득 옛일이 생각키움은 -
그 시절이 조아졌음이라
뒤산 솔밭 속에 늙은 무덤 하나
밤마다 우리를 맞어 주었지만 어떠냐!
그때 우리는 단 한 번도
무덤 속에 무엇이 묻혔는 가를 알려고 해 본 적도 느껴 본 적도 없었다.
떡갈나무 숲에서 부엉이가 울어도 겁나지 않었다
그 무렵 나는 인생의 제1과(第一課)를 즐겁고 행복한 것으로 배웠다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하늘 높히 단장(短杖) 홰홰 내두르며
교외(郊外)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그 날 밤
성좌(聖座)도 곱거니와 개고리 소리 유난유난 하였다
우리는 아무런 경계도 필요없이 금(金)모래 구르는
청류수(淸流水)에 몸을 담갔다
별안간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울부짖고 번개불이
어둠을 채질했다
다음 순간 나는 내가 몸에 피를 흘리며 발악했던 것을 깨달었고
내 주위에서 모든 것이 떠나 갔음을 알았다
그때 나는 인생의 제2과(第二課)를
슬픔과 고적(孤寂)과 애수(哀愁)를 배웠나니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깃폭인양 옷자락 펄펄 날리며
교외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낙사랑(絡絲娘)의 잣는 실 가늘게 가늘게 풀린다
무엇이 나를 적막(寂寞)의 바다 한가운데로 떠박지른다
나는 속절없이 부서진 배(船) 쪼각인가?
나는 대고 밀린다
적막(寂寞)의 바다 그 끝으로
나는 바닷가 사장(沙場)으로 밀려 밀려 나가는 조개 껍질인가?
오! 하늘가에 홀로 팔장끼고 우 -뚝 선
저 거무리는 그림자여......
단장 : 짧은 지팡이.
손잡이가 꼬부라진 짧은 지팡이. 개화장(開化杖)
낙사랑 : 실을 두른 여자
'**시의 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빗소리/주요한 (0) | 2014.07.16 |
---|---|
알렉시스와 도라/괴테 (0) | 2014.07.15 |
적막강산/백석 (0) | 2014.07.08 |
소네트 68/셰익스피어 (0) | 2014.07.07 |
이대로 저대로/김삿갓 (0) | 2014.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