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있을 때, 주를 찬양하여 감사한 삶이 되시길(샬롬이)

**감동의 글

지금 행복하라/차동엽

샬롬이 2013. 5. 30. 12:46

 

 

 

 

지금 행복하라

 

 

 

/차동엽

 

 

 

 

 

여기서 천국 살자

<기쁘게 사는 사람>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나고,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

항상 밝은 표정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사람,

그분은 월간 <참 소중한 당신>에 <대한민국 여성 No 신사임당>을 연재하고

이어서 단행본으로 펴낸 소설가 안 영 선생이다.

안 영 선생은 스스로를 '작은 풀꽃'이라 부르며 퇴직 후

하느님 사업에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필자는 그분의 수필집 <하늘을 꿈꾸며>에 추천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여기 그 전문을 소개한다.

 

"안 영 선생님은 낭랑한 목소리만큼이나 고운 마음씨를 지니셨습니다.

그 마음에는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거나, 무엇을 보거나 사랑이 배어나옵니다.

수년 전 남편을 여의시고 삼남매 모두 사회의 인재로 키워놓으신 이후,

그 오롯한 사랑을 예수님께 향하시더니,

요즈음에는 그 행복이 여간 아닌 모양입니다.

저는 안 영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제 영혼이 맑아짐을 느낍니다.

스스로에게는 지나칠 만큼 검약하고 남에게 베푸는 일에는 무척 후한 하늘 마음,

수준 높은 지성을 갖추고서도 하느님 말씀은 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린 마음,

언제나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희망을 얘기하는 푸른 마음,

이런 마음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마음 흐르는 대로 쓰는 글이 수필이라면, 이번에 내시는 안 영 선생님의 수필집은

이러한 마음의 빛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글모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읽으시는 분마다 저처럼 영혼이 맑아지는

은총을 누리시리라 믿어 마지 않습니다."

 

 선생은 어린 시절 6.25 전쟁으로 조실부모하는 불행을 겪었고,

지금도 남들처럼 현세적 행복의 요건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기쁘게 살고 있다.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행복의 기술'을 고루 갖추고

오로지 하느님깨 의탁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의 시간>

 

우리가 평생 웃는 웃음은 얼만큼 될까?

보통 인간이 일흔 살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잠자는 데 보내는 시간은 23년, 양치질하고 씻는 데 2년, 일하는 데 26년,

화장실 가는 데 1년가량, 거울 보는 데 1년 반, 차타는 데 6년,

누군가 기다리는 데 약 3년, 아침. 저녁 신문 보는 데 2년 반,

텔레비전 앞에 있는 시간이 4년 정도라 한다.

그렇다면 웃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대략 1-2년 정도?

놀라지 마라, 하루 열 번 웃는다 해도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 5분 정도,

평생을 합쳐야 우리가 웃는 데 보내는 시간은 80일 정도 내외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 번 웃을 때 몇 초 정도로 계산한다면

40일 내외뿐이라는 얘기다.

우리의 인생에서 행복의 시간은 이처럼 너무나 짧다.

당신은 지금 웃고 있는가" 진정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얼굴을 펴면 인생길이 펴진다>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은 대단히 중요하다.

첫인상은 보통 3초 안에 결정된다고 한다.

첫인상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연구가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알버트 메라비안에 의해서 행해졌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언어적인 요소(말하는 내용)가 7%, 외모. 표정. 태도 등

시각적인 요인이 55%, 그리고 목소리등 청각적인 요인이

 38%를 차지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은 첫 만남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의 연구를 웃음의 측면에서 보면 웃는 얼굴과 웃음소리가

첫 만남의 93%를 지배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얼굴>이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대니얼 맥닐은 그의 저서를 통해,

판사들은 재판에 임할 때 공평무사하게 판결을 내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재판 중에 미소를 짓는 피고인에게

더 가벼운 형량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가장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곳이어야 할 법정에서도 

웃음과 미소가 최고의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그리고 여기(here and ndw)

 

< 내 손안에 다 가지고 있다>

 

J.모리스의 <잠깐만요>에는 갠지스 강변에 살았던

어부, 살림(salim)에 대한 전설이 실려 있다.

어느 날 밤, 살림은 고된 일과를 마치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기가 부자가 된다면 어떻게 할까'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작은 돌처럼 느껴지는 것들로 가득 찬

 가죽주머니가 그의 발에 채였다.

그는 그 주머니를 주워 그 속에 든 돌을 물 속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돌을 던졌다.

"부자가 되면 난 큰 집에서 살 거야."

그는 또 하나의 돌을 던지며 속으로 말했다.

"하인들을 고용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을 거야."

마지막 한 개의 돌이 남을 때까지 그는 계속해서 던졌다.

살림이 마지막 돌을 손에 쥐고 들어 올리자 돌이 광선을 받아 번쩍였다.

그때 그는 그 돌들이 귀중한 보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어부는 가상(假想)의 부(富)에 대해 헛된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손에 쥐고 있던 진짜 '부'를 내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이미 우리 손안에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유명한 가톨릭 영성 상담가인 존 포웰은

자신의 거울 아래 이런 글을 써놓고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에게 읽어준다고 한다.

"당신은 오늘 당신의 행복을 책임질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다."

 

 

<'지금'이 행복의 때다>

 

시인 정현종은 행복을 놓치고 아쉬운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행복한 사람은 '미래'를 위해 살지 않는다.

'지금'이 바로 행복의 순간이다.

'여기'가 바로 행복의 장소다.

'지금 여기(here and now)'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의미한다.

매일매일 경험하는 평범한 것, 일상적인 것들이 행복의 계기다.

평범한 일상에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고 찬란한 의미가 배어 있다.

잊지 말자. 당신의 '오늘'은

당신이 살아온 과거의 총결산이며

당신이 맞이할 미래의 담보다.

당신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가

 당신의 과거와 미래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