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
/김남조
보아라
나무들은 이별의 준비로
더욱 사랑하고만 있어
한 나무 안에서
잎들과 가지들이
혼인하고 있어
언제나 생각에 잠긴 걸 보고
이들이 사랑하는 줄
나는 알았지
오늘은
비를 맞으며
한 주름 큰 눈물에
온몸 차례로
씻기우네
아아 아름다워라
잎이 가지를 사랑하고
가지가 잎을 사랑하는 거
둘이 함께
뿌리를 사랑하는 거
밤이면 밤마다
금줄 뻗치는 별빛을
지하로 지하로 부어내림을 보고
이 사실을 알았지
보아라
*지순무구
나무들의 사랑을 보아라
머잖아 잎은 떨어지고
가지는 남게 될 일을
이들은 알고 있어
알고 있는 깊이만큼
사랑하고 있어
*지순무구:
더없이 순결하고 깨끗하다.
<시의 해설>
이 시를 읽고 우리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
'알고 있는 깊이 만큼/사랑하고 있어'라는
구절을 깊이 읽어 보라.
우리 사람들은 서로 알고 있다고
사랑하고 있는가?
우두커니 말없이 서 있는 푸른 나무를 보고
우리에게 '사랑하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일 뿐이며, 그 시인의 마음과
시선을 되새겨 보아야 할 듯 하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민예원 편집부 엮음-
'**시의 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 작은 심장/장 루슬로 (0) | 2018.04.20 |
---|---|
그리움/괴테 (0) | 2018.04.14 |
단 하나의 삶/메리 올리버 (0) | 2018.03.20 |
사람에게 묻는다/휴턴 (0) | 2018.03.17 |
의족을 한 남자/제임스 테이트 (0) | 2018.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