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권(關念圈)
/베르나르 베르베르
관념은 살아 있는 존재와 같다.
관념은 태어나서 자라고 번식하며,
다른 관념과 대결하다 마침내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면 관념은 생물처럼 진화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다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장 약한 것을 제거하고 가장 강한 것을
번식시키기 위해 관념들 사이에서도 선별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1970년에 자크 모노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저서에서,
관념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으며 유기체처럼 번식하고
증식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1976년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에서
<관념권>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생물권이 생물의 세계이듯이 관념권은 관념의 세계이다.
도킨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누가 어떤 창의적인 관념을 내 정신에 심어 준다면,
그는 말 그대로 나의 뇌에 기생하는 것이고,
그 생각을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의 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이라는 관념을 예로 든다.
이 관념은 어느 날 생겨난 뒤로 끊임없이 진화해 오고 전파되어 왔으며,
복음과 경전, 음악과 미술 등을 통해 중계되고 확대되었다.
또, 이 관념은 사제들을 통해 재생산되어 왔고,
사제들이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에 맞도록 재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관념은 생성하고 발전하고 소멸하는 속도가
생물보다 더 빠를 수 있다.
예컨대 카를 마르크스의 정신에서 나온 공산주의라는 관념은
아주 짧은 기간에 퍼져 나가 공간적으로 지구의 반에 영향을 미쳤다.
이 관념은 진화하고 변화하다가 결국은 쇠퇴하여
갈수록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관념은 그렇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라는 관념도 변화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문명은 관념권에서 벌어지는 관념들 간의 투쟁을 통해 발전해 간다.
오늘날 컴퓨터는 관념들의 이동과 변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인터넷 덕분에 관념은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갈 수 있으며,
경쟁자나 천적과 대결하는 일도 훨씬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인터넷은 좋은 관념들뿐만 아니라
나쁜 관념들을 널리 퍼뜨리는 데에도 아주 유용한 수단이 된다.
관념의 세계에는 <도덕>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긴 생물의 세계에서도 진화가
어떤 도덕률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어떤 관념을 전파하거나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관념을 퍼올 때는
좀더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관념들은 이제 그것들을 창안한 사람들이나 전달하는 사람들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하나의 관념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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