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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글

당신은 정말 거북선을 아는가/이어령

샬롬이 2013. 9. 2. 11:17

 

 

 

 

당신은 정말 거북선을 아는가

 

 

 

/이어령

 

 

 

 

'배꽃 계집애 큰 배움집'은 한글 전용 문제로

세상이 한창 시끄럽던 때 유행했던 말이다.

물론 '이화여자대학교梨花女子大學敎'를 순수한 우리말로 옮겨 놓은 이름이다.

공처가를 '아내 무섬쟁이'라고 부르고 전화기를 '번갯불 딱따구리'라고 부르자는

농담 같은 말들이 진지하게 국어 순화의 공식 기구를 통해 제시되던 때이니 만큼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묵은 이슈이지만 학교를

 '배움집'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이냐 하는 것은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배꽃 계집애'라는 말이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귀에 거슬린다면

'배꽃 아가씨'로 고쳐 부를 수 있지만 학교를 '배움집'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어감 문제에서 끝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는 배울 학學, 가르칠 교敎가 합쳐진 말로,

문자 그대로 배우고 가르치는 곳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학교는 가르치는 선생과 배우는 학생의 쌍방을

다 같이 아우르는 통합적 개념을 나타낸다.

 

학교는 가르치는 선생과 배우는 학생의 두 날개가 있어야만

비로소 비상飛翔할 수 있는 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배움집이라고 옮기면 배우는 한쪽 날개만 남기고

가르치는 날개를 떼어버리는 결과가 되고 만다.

자지와 다른 쪽 날개를 가진 새를 발견하여 짝을 이룰 때까지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전설의 새,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만다.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면 그것은 한글 전용 문제가 아니라

바로 교육철학과 그 방법에 속하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아무리 배우고 가르치는 양쪽 입장을 다 같이 아우르고 조화시키려고 해도

어느 한쪽으로 쏠리거나 어느 쪽 하나를 제거해 버리거나 하는 것은

인간이 빠지게 되는 편향성이다.

그래서 학교라는 말은 선생 . 학생을 다 같이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안에 들어가 보면 학생들은 학실學室이 아니라

교실敎室에서 그리고 학과서學科書가 아니라 교과서敎科書로 배우게 된다.

 

두말할 것 없이 교실은 가르치는 방이다.

그리고 교과서는 가르치는 책이다.

모두 선생의 입장에서 붙여진 일방적인 이름이다.

그렇다고 학생의 입장에서 교실과 교과서를 학실 . 학과서로 바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가르치는 쪽에서 배우는 쪽으로 입장을 옮겨도

여전히 학교는 날지 못하는 비익조의 운명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처럼 쌍방을 통합하고 아우르는 것으로 그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 내려면

'학교실', '교학서' 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야 하고

또 그런 교육철학이나 사고 영역의 혁명이 일어나야만 한다.

 

교육공간에 붙여진 말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교육 내용도 마찬가지로 편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 이런 교실, 이런 교과서에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어깨 너머로 쓸쩍 보기만 해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인치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배우지 않고 자라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5,000만 명 예외 없이 아니 남북다 합쳐 8,000만 명의

한국인 모두가 거북선은 배웠지만 그 거북선과 싸운 일본 배에 대해서는

 가르치거나 배운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교육이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행위인 것처럼

전쟁 역시 양쪽 군 사이에서 펼치는 싸움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는 속담처럼

모든 승부는 상대적 평가에 의해서만 결판난다.

전쟁은 실체론이 아니다. 상대적 원리에 의해 생성되는 관계론인 것이다.

'가위바위보'처럼 상대방이 무엇을 내느냐에 따라 나의 '주먹'이 결정된다.

주먹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상대방이 가위를 내면 이기고

거꾸로 보자기를 내면 진다.

 

 

못을 보면 그것을 박는 망치가 어떻게 생겼을지 짐작이 가듯

일본 배를 보면 그것을 친 거북선이 어떤 것이었는지

자연히 그 특성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약 거북선과 대적한 일본의 '아다케安宅나 '세키'라는 군선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고 배웠더라면 300~400년 바다 속을 뒤져

 그 잔해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거북선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다케 후네安宅船는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 군함 중에서 가장 큰 배이고

작은 것을 세키 부네라고 불렀다.

아다케는 한자 의미 그대로 매운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일본 지명 안택포安宅浦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아다케는 이세형伊勢船型과 후다나리형二成船型 두 종류가 있는데,

이세형은 한국의 전통 배처럼 뱃머리가 평평하고,

 후다나리형은 뽀족한 구조로 된 것이 특징이다.

아다케 후네는 무로마치시대 후기에서 에도시대 초기까지

 일본에서 널리 사용된 군선 가운데 하나다.

몸집이 크고 중후한 무기를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속도는 느리지만

전투 시에는 수십에서 수백 명의 전투원들이 탈 수 있었다.

큰 것은 길이가 50m 이상, 폭 10m가 넘는 거대한 배인데,

구키 요시다카가 타고 온 아타케 후네는

한국에서 '니혼마루'日本丸 "라고 불리며 거체를 자랑했다.

원래 아다케 후네는 견명선遣明船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작은 것은 쌀 500석에서 큰 것은 1000석 이상까지 실을 수 있는 배선이다.

큰 아다케는 2층에서 4층까지 누각이 세워져 있어

'해상의 성'이라고까지 말해진다.

 

일본의 해군 전술은 왜구倭寇들의 전법을 모델로 한 것이다.

원래 해적이란 화공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불이 나 타버리거나 침몰하면 빼앗아올 물건도 공염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어리석은 해적이라고 할지라도

상대편 배에 올라타 나포하는 전략을 쓴다.

해적이 아니라도 육전에 능한 군대들은 모두 근접전으로

상대편 배에 올라 싸우려고 한다.

로마가 카르타고와 해전을 할 때 '까마귀'라고 부른 기상천외의 신병기를

사용한 것도 전선에 올라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해적이나 로마군과 같은 전술을 사용하여 한국의 배를 치려고 한 것이

바로 임진왜란 때의 해적 전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일본 수군의 전술이요,

그 배였다. 일본의 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들의 해전 전법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는 일은

환상처럼 전해 오는 거북선보다 훨씬 더 쉽고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豊臣秀吉가 영주들에게 만들게 한

'아다케'나 '세키'의 전선의 기능과 그 구조에 대한 자세한 기록들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까지 갈 것 없이 일본 사학자 가다노 스기오의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소설 수준의 자료만으로도

거북선을 일본 배와의 관계 문맥으로 새롭게 읽을 수 있다.

 

 일본의 중형 전투선에는 두꺼운 합판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 그 위에 지휘탑을 설치하였다.

그뿐 아니라 측면에는 두께 2~3촌寸 정도의 녹나무과나

무궁화과 나무의 합판을 줄지어 세워 놓았다.

두께 8cm,길이 1.5cm 정도의 합판을 배의 측면에

둘러놓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것이 방패판이라고 하여

적의 화살이나 탄환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다.

이 방패판에는 총포나 석궁을 쏘기 위한 구멍을 만들어 놓았고

그 하단부는 바깥쪽으로부터 경첩을 이용하여 고정시켜 놓았다.

즉, 이 방패벽(다테이다)은 배의 바깥쪽으로 넘어지게 되는

구조로, 적의 배와 근접전을 할 경우 그 방패벽을 이용하여

적선으로 건너가는 다리 역할을 하도록 고안해 놓은 것이다.

 

 다른 것을 무시하고 가조한 부분만 읽어봐도

어째서 이순신 장군이 나대용을 시켜 종전의 판옥선을

급히 거북선으로 개조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아다케나 세키와 같은 중형 전투선에 설치하 경첩을 단 두꺼운 판자벽은

앞에서 말한 로마 군선에 단 가마귀의 신병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장치다.

시오노 나나미의 증언을 들어보자.

 

까마귀는 항해 중에는 뱃머리와 가장 가까운 돛대에

로프로 고정되어 있는 일종의 잔교다. 뱃머리부터 적선에 접근하면

돛대에서 풀려난 까마귀는 적선 갑판으로 떨어진다.

까마귀 끝에 붙여 놓은 날카로운 철제 갈고리가

낙하할 때의 힘으로 갑판에 꽂혀 고정된다.

로마 병사들은 이 다리를 통해 적선으로 물 밀듯 쏟아져 들어간다.

항해술에 자신이 없는 로마인들은 이 까마귀를 이용하여

해상 전투의 육상전투로 바꾸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이순신 장군과 대적한 일본 장수, 구키 요시다카가 이끄는

일본 수군들은 카르타고와 싸웠던 로마군대처럼 해상전투를 육상전투로

바꾸려고 한 것이다. 경첩이 달린 아다케의 판자벽들은

로마 군선에 장치된 까마귀처럼 상대방에 접근하면 다리로 바뀐다.

들판에서의 칼싸움에 능통한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물 위에서는 약하나

상대방 배에 올라타기만 하면 천하무적의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반대로 그들을 배 위에 올라타지 못하도록 한다면,

아다케의 상륙전처럼 경첩 달린 그 판자벽의 다리를 무력하게 한다면

그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고 만다.

그것이 바로 왜병이 등선하지 못하도록 판옥선에 철첨(鐵尖: 쇠꼬챙이)이

박힌 귀갑 모양의 뚜껑을 덮은 거북선이었던 셈이다.

거북선을 처음 본 왜병들이 배 위에 오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혼란 끝에

자멸하게 되는 장면이 일본 측 기록들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일본 배에 대해서는 이미 신숙주의 자세한 보고와

그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 있어서 이순신 장군은 일본 배와

그들의 왜구식 전법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본 배는 근해에서만 돌아다니는 선박이어서

원래부터 선체가 약했을 뿐만 아니라 배의 외벽 부분을 만들 때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한 부분에 마키하다短水草라는 것을

방수제 대신 끼워 넣은 것으로, 외부의 충격에 약한 허점을 갖고 있다.

묵직한 우리 배, 특히 거북선이 당격撞擊하면

금방 선체가 깨져 침몰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임란 때의 일본 배와 그 전략을 알게 되면

거북선은 일본의 근접전을 피하는 방패 역할과 동시에

놋토리 전법(배를 상대방 배에 가까이 붙인 다음,

상대방 배에 올라타 싸우는 전법)을 역이용하여

공격하는 날카로운 창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이순신 장군의 승리는

거북선의 하드웨어적 발명보다 왜군의 전법에 대응한

소프트웨어의 전술적 산물이며 그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거북선을 실체론으로 보지 않고 관계론으로 생각의 틀을 바꾸면

새오룬 사실들, 진정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거북선의 발명가로서의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전술 전략가로서의 이순신 장군,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승리로서의 새로운 전쟁의 의미가 떠오른다.

한 마디로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거북선을 발명한 과학자로서,

백의종군한 애국 애족의 성웅으로서 그리고 시조시인이요,

난중일기를 쓴 문사로서 다양하게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통해 진정 배워야 할 것은

실체론적 사고를 관계론적 사고로, 하드웨어적 발명을

소프트웨어적 발견으로 그 생각을 바꿔나가는 것이다.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東鄕平八郞 원수가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칠 때

사용했다는 T형 전법은 다름 아닌 이순신 장군이 일본을 격파한

학익진鶴翼陳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적함이 좁은 해협을 지나기 위해 일렬종대로 들어올 때

그 앞에서 횡대로 맛저 공격하면 아무리 적함의 수가 많아도

소수의 배로 적선을 격파할 수 잇다는 전술이다.

양측의 함대가 T자 모양으로 대치해 싸우기 때문에

아군이 5척이고 상대가 20척이라고 해도 학익진 대형의 T형 전법을 쓰면

5대 20이 아니라 5대 1로 전세가 바뀌게 된다.

도고 원수가 발틱함대를 격파하고 영국을 방문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일본의 넬슨이요, 이순신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도고가 전첩 축하의 자리에서 어째서 다음과 같은 답사를 했는지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몰랐을 것이다.

 

 "불초 도고는 혹은 넬슨 제독에 비유되고

혹은 이순신 장군에 비견하여 칭찬받고 있지만

그것은 분에 넘치는 광영입니다. 더욱이 넬슨 몰라도

 이순신 장군과 비교되는 것은 당치도 않습니다.

불초 도고 같은 존재는

 이순신의 발밑에도 이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눈물이 나오는 대목이다.

도고의 진솔한 고백이나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 때문이 아니다.

거북선이나 학익진은 이순 장군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슬기요,

한국인의 철학의 틀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도고가 그의 발밑에도 이르지 못한다고 한 이순신 장군의 위대성은

바로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그 틀이 한국문화 깊숙이 박혀 있는

상대성의 원리 그리고 관계론적 사고의 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성 원리 그리고 관계론적 사고의 틀

 

토박이 우리말을 보면 안다.

세계의 어는 나라 말보다 쌍방향성이나 상대적 대립물을 한데 어우르는

통합력을 나타 내주는 말이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아이들에게 "어머니 어디 가셨니?" 라고 한 번 물어보라.

만약 그 아이가 미국 아이라면 "MoM is out"이라고 할 것이다.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도 일본 아이는 "외출外出했다"고 할 것이고

중국 아이는 "축문出門" 혹은 "출외出外". "출거出去"라고 할 것이다/

오로지 우리 아이들만이 "나들이 가셨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나들이는 '나가고 들어오는 것'의 준말이다.

다른 아이들은 일방통행적인 것으로 보는데 우리나라 아이는

어머니가 들어오기도 전에 나가고 들어왔다고 겹시각으로 말한다.

 

또 하나의 예로, 서랍이라는 말도

 어느 나라에서나 모두 '빼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영어의 'Drawer'가 그렇고 일본의 '히키다시가 그렇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서랍을 밀어낸다는 뜻으로 '추체'라고 한다.

우리만이 빼고 닫는 서랍의 쌍방향성 그대로 '빼닫이' 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학교의 '배움집'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말이요,

순수한 우리 생각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여기게 되었는가.

거북선을 가르치고 배우면서도 그와 싸운 일본 배에 대해서는

 가르치고 배우려 하지 않는가.

실체론에서 관계론으로 다시 생각을 바꿔야 하는 시대가

우리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