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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글

벽을 넘는 두 가지 방법/이어령

샬롬이 2013. 8. 20. 09:05

 

 

 

 

 

벽을 넘는 두 가지 방법

 

 

 

 

/이어령

 

 

 

 

 -벽을 긁는 글. 그림. 그리움-

 

 

 

벽에 걸려 있던 달력을 미로Joan Miro의 그림달력으로 바꿨다.

그림달력 하나로 방이 달라진다. 역시 회화는 벽에 의존한다.

벽이 없었으면 벽화는 물론이고 벽에 거는 초상화와

그 많은 그림들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벽을 만들었다. 허허 벌판에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벽 속에서는 감옥이나 동굴에서처럼 살아갈 수 없다.

벽에 의지하고 벽에 반발하는

앰비버런스(ambivalence:모순)에서 회화가 생겨난다.

그림은 벽에 뚫어 놓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이다.

창을 벽의 상처라고 말하듯 그림 또한 피가 흐르는 벽의 상처인 것이다.

 

동양의 족자와 병풍이 모두 그렇다.

사람들은 절벽 같은 공허의 벽을 견디지 못한다.

인도의 설화처럼 벽은 태양보다, 구름보다, 바람보다 강하다.

오직 날카로운 설치류인 쥐만이 구멍을 뚫을 수 있다.

벽은 바람을 막고 풍경을 도살한다.

눈을 가리고 신체를 묶는다.

벽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곳에 구멍을 뚫으려면

날카롭고 빨리 자라는 송곳니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한밤의 어둠 속에서 갉고 갉는 색채와 선

그리고 회화의 구도가 탄생한다. 그림은 그렇게 태어난다.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희랍의 전설에는

회화와 조각이 더떻게 탄생했는가를 밝힌 이야기가 있다.

어느 청년을 열애한 소녀가 그와의 이별을 앞두고 상심하여 눕는다.

소녀의 아버지는 그 청년의 옆얼굴이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따라

그 윤곽의 선을 그리고 색체를 칠한다.

그래서 이윽고 그 청년과 꼭 닮은 릴리프,

그러니까 그림과 조각의 중간인 부조浮彫가 생겨났다.

그림의 시원이 딸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그림자를 그림으로, 조각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는

상징적이라기보다 사실적으로 들린다.

벽을 긁는 것, 벽에 어리는 그림자 그리고 벽 너머로 사라질

연인에 대한 그리움....그렇다. 긁는 것, 그림자, 그림,

그리움 모두 비슷한 단어 아닌가.

 

희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묵배墨梅'가 탄생하는 전설도 그와 흡사하다.

달밤에 풍류를 즐기다 문뜩 달빛을 타고 창문에 어리는

매화와 그 나뭇가지의 그림자를 본다.

소쇄한 매화의 실루엣에 정신을 잃었다.

그 그림자를 남기기 위해 먹으로 그 그림자의 윤곽을 그대로 따라 그렸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세한삼우나 사군자에서 보는 그 묵매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에스키모인들은 얼음집에서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조각을 한다고 한다.

그것처럼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벽에 붙인다.

현대 회화는 벽장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전위적 비평가들은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회화는 벽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정신의 산물이다.

허공은 그림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 자체가 이미 회화요, 빛이요, 구도이기 때문이다.

벽이 있기에, 시야를 가리는 밋밋한 차폐막이 있기에 그림을 붙인다.

붙인다기보다 뚫는다. 원시인의 동굴에 알타미라 같은 벽화가 발견되는 것은

바로 그 동굴을 뚫어 들판의 짐승, 숲 속의 사슴들에게 나아가려고 한 것이다.

그림을 붙이는 순간 그만큼의 벽은 사라진다.

 

오늘 낡은 달력을 떼고 미로의 달력을 붙여놓고 나서

원시인이 최초로 어두운 동굴에 벽화를 그려놓고

좋아했던 것처럼 그렇게 웃었다.

어원적으로도 그림이라는 말, 긁는다라는 말 그리고 글이라는 말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말, 그것은 같은 부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따로 떨어져 불리던 그 말들이 하나의 초점으로 합쳐지면서 떼어낸

달력의 벽면 위에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 같은 것들이 하나의 관자놀이처럼 뛴다.

 

 아오모리의 벽화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에 징용온 조선 사람이

아오모리 탄광의 어두운 벽을

손톱으로 긁어 글을 썼대요.

 

어무니 보고시퍼

고향의 그리움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되어

남의 땅 벽 위에 걸렸대요.

아이구 어쩌나 어무니 보고시퍼

맞춤법에도 맞지 않은 보고싶다는 말

한국말 '싶어'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언어

배에 붙으면 먹고 싶어 배고프고

귀에 붙으면 듣고 싶어 귀고프고

눈에 붙으면 보고 싶어 눈고프고

가슴에 붙으면 가슴 아파 가슴고프고

"마음의 붓으로 그려 바친 부처님 앞에 엎드린 이 몸은..."

<보현십이가>의 한 이두문자처럼 해독하기도

힘든 그리움이 된대요.

옛날 옛적 이 일본 당에 끌려온 조선 청년이

탄광 벽을 손톱으로 긁어 글을 썼대요.

어무니 보고시퍼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벾을 긁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은 벽을 넘는다.

 

 

 

 

-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벽 -

 

 

 

 

나는 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할 때에는 그 주제를 '벽을 넘어서'라고 했다.

정말 몇 년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철의 장막이 무너졌다.

서구 문화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벽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도시든 개인의 삶이든 모든 것이 두꺼운 벽을 기본으로 이루어진다.

서얄의 폴리스 국가란 무엇인가. 그것은 완전히 성벽 안에 세운 도시다.

유럽은 섬이 아닌 대륙인데도 일찍부터 고층화가 이루어졌는데,

성벽이라는 제한된 도시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가 커지면 옆으로 퍼지지 못하고 위로 치솟아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동양도 예외는 아니다. 성으로 치면 중국의 만리장성만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서양 도시국가의 성은

인간과 자연을 둘로 나누고 그 대립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동양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래서 서양의 벽은 아주 두껍다.

나라의 성만이 아니라 개인 집의 벽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벽이 얇고 허술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서구의 벽은 철저하게 방음이 잘 되는 두꺼운 벽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서양 집은 대개 적조식積造式으로, 돌이나 벽돌로 벽을 쌓아 만든 것이다.

거기에 비해 한국 집은 가구식架構式이라고 하여

기둥을 세워놓고 집을 지은 비내력벽非耐力壁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한옥은 벽을 터도 무너지지 않지만

양옥은 집 전체가 무너지고 만다.

 

 

- 지하실문화와 개구멍문화 -

 

 

 

언젠가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서양 문화를 '지하실문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하실은 사면이 벽이다.

지하실은 땅 밑을 팠기 때문에 그 벽은 땅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

 절대로 허물 수 없다. 서구의 문화, 예술, 정치적 담론과 온갖 음모

그리고 감금도 지하실에서 만들어진다.

나치에 항거한 레지스탕스의 거점도 지하실이었고,

나치가 그들을 잡아 고문한 곳도 바로 그 지하실 벽 안이었다.

아무리 절규해도 지하실에서 외치는 인간의 목소리는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사르트르의 소설 <벽>을 읽어보면 안다.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에는 지하실이라는 것이 없다.

정반대로 벽에 구멍을 뚫은 개구멍이라는 것이 있다.

개구멍을 통해 사람이나 개는 벽을 횡단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 계획적으로 뚫었다기보다

 허술한 담벽이어서 어딘엔가 자연스럽게 생긴 구멍이다.

이 개구멍을 통해 궁궐과 사가의 내통이 가능했고,

이도령과 춘향이의 은밀한 사랑이 이뤄졌다.

서양의 역사가 벽을 쌓은 지하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의 역사는 거꾸로 벽을 뚫는 개구멍에서 생겨난다.

개구멍이 뚫린 이 허술한 담벽을 인공적인 것으로

디자인해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병풍이다.

병풍이야말로 지하실문화와 다른 한국 문화의 특성을

눈에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병풍은 이 세계에서 가장 가볍고 얇으며 가변적인 벽이다.

 

상황에 따라 신축성 있게 적응한다. 부드러운 벽, 생멸하는 벽,

필요할 때 펴면 벽이 되어 공간을 가르고 막고 가린다.

그러다 그 필요가 없어 접어 거두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콘크리트 벽 같으면 쌓고 허무는 데 큰 공사를 해야 하지만

병풍으로 막은 벽은 손 하나로 쌓고 허문다.

 

서양에도 스크린이라고 하여 간단히 접어 세우는

 나무 판때기로 만든 가리개가 있기는 하다.

병풍 같은 가리개의 그 벽은 천재적인 발명가로 알려진

벅민스터 플러 Richard Buckminster Fuller에 의해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고안되었다.

우리가 아코디언 벽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병풍을 한국 고유의 것인 것처럼 말하는가, 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항의해올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병풍은 중국이 종주국이고, 일본에는 금병풍 같은 것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일본도 알고 중국도 알고 있는 미국의 동양학자 맥쿤의 말을 들어보라.

"이 지상에서 병풍을 가장 생활화하고

오늘날에도 가장 많이 쓰는 민족은 단연 한국"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한국인이 처음 태어난 공간을 생각해보면 안다.

우리의 선조들은 모두 병풍으로 두러쳐진 산실에서 태어났다.

그러다 돌이 되면 또 병풍을 둘러치고 돌상을 받는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결혼하게 되면 또 병풍을 둘러치고

의식을 올리고 첫날밤도 병풍 안에서 치른다.

 다 늙어 환갑이 되면 병풍을 둘러치고 잔칫상을 받는다.

그러다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날 때도 병풍으로 가려진다.

아니다. 죽고 난 뒤에도 병풍과의 인연을 끊지 못한다.

제삿날이 돌아오면 병풍 사이로 이승과 저승이 만난다.

 

이렇게 쉽게 세우고 허물 수 있는 벽을 만들어

그 견고하게 우리를 에워싸는 지하실 벽을 극복한다.

그것을 넘어 자유롭게 왕래한다.

화조나 문방구가 그려져 있는 아름다운 병풍이 너와 나를 가르고 

인간과 자연을 분할하는 서구의 그 두터운 벽문화를 탈脫구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