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있을 때, 주를 찬양하여 감사한 삶이 되시길(샬롬이)

**감동의 글

<감자 먹는 사람들>, 진정한 농촌 그림/빈센트 반 고흐.

샬롬이 2012. 12. 4. 13:47

 

- <감자 먹는 사람들> 81.5 X 114.5cm .1885년 4월. 캔버스에 유채 -

 

 

 

<감자 먹는 사람들>, 진정한 농촌 그림

 

 

 

/빈센트 반 고흐

 

 

 

 

테오에게***

 

네 생일을 맞아,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에 맞춰 유화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 진행되긴 하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최종 그림은 기억을 더듬어 그리니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성되겠지만,

겨울 내내 이 그림을 위해 머리와 손 그리는 연습을 해왔다.

 

  강한 열의를 갖고 작업에 임했기에, 며칠 동안은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았다.

가끔은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다는 게 뭬냐. "행동하고 창조하는 것' 아니냐.

 

 <감자 먹는 사람들>은 황금색과 잘 어울릴 것 같다.

혹은 짙게 그늘진 잘 익은 곡물 색의 벽지를 바른 벽 위에 걸어놓아도 잘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배치하지 않고 그림을 보여서는 안 된다.

  특히 어둡거나 흐린 배경에서는 이 작품의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림의 내용이 아주 어두운 회색조의 실내를 들여다보는 것이 때문이다.

실제 삶 속에서도, 램프가 하얀 벽 위로 뿜어내는 열기와

불빛은 관찰자에게 더 가깝기 때문에, 전체 장면을 황금색 불빛 속에서 보게 된다.

물론 관객은 그림 바깥에 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그림 전체가 뒤쪽으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그림의 주변에는 짙은 황금색이나 구릿빛이 칠해져 있어야 한다.

그 그림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부디 내 말을 잊지 말아라.

황금빛 색조와 함께 배치해야 그림이 더 잘 살아난다.

불행하게도 흐리거나 검은 배경에 놓인다면, 대리석 같은 질감이 죽어버릴 것이다.

그림자를 푸른색으로 칠했기 때문에 황금색이 이것을 돋보이게 해준다.

    어제 에인트호벤에 사는 그림 그리는 친구의 집에 그 그림을 가지고 갔다.

사흘 동안 그곳에 머무르면 그림에 달걀 흰자위를 칠하고,

약간의 세부 손질을 해서 마무리하려 한다.

 

  친구는 색 다루는 법을 배우려고 아주 열심인데,

<감자 먹는 사람들>에 특히 매료되었다.

석판화를 제작하기 위해 그렸던 습작을 이미 본 적이 있는 그 친구는

내가 색체와 데생을 그 정도로 잘 다루리라고는 믿지 않았다고 했다.

그도 모델을 두고 그리기 때문에 농부의 머리나 손,

손가락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활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그 그림에 감탄하고,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 겨울 내내 이 직물을 짜낼 다양한 색채의 실을 손에 쥐고서,

그 결정적인 짜임새를 찾아왔다.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고 거친 모양을 한 천에 불과하지만,

그 천을 짠 실은 세심하게, 그리고 특정한 규칙에 따라 선택되었다.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감상적이고 나약하게 보이는 농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대상을 찾겠지.

그러나 길게 봤을 때는 농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게 그리는 것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속성을 살려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있고 먼지로 뒤덮인 푸른색 스커트와 상의를 입은

시골 처녀는 날씨와 바람, 태양이 남긴 기묘한 그늘을 갖고 있을 때

숙녀보다 더 멋지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숙녀들이 입는 옷을 걸친다면, 특유의 개성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또한 농부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려고 신사복을 차려입었을 때보다

작업복을 입고 밭에 나가 있을 때가 더 좋아 보인다.

 

  이와 비슷하게, 농부의 삶을 담은 그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그리는 것은 잘못이다.

농촌 그림이 베이컨, 연기, 찐 감자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비정상적인 게 아니다.

마구간 그림이 거름 때문에 악취를 풍긴다면 훌륭하다고 해야겠지.

바로 그게 마구간이니까. 밭에서 잘 익은 옥수수나 감자냄새, 비료냄새,

거름냄새가 난다면 지극히 건강한 것이지.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그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농촌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

내가 이 그림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게 될런지 궁금하다. 그랬으면 좋겠다.

 

  포르티에 씨가 내 그림을 취급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에게 습작보다 나은 것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뒤랑 뤼엘에게는, 비록 그가 데생이 그리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이 유화를 보이도록 해라.

그가 이 그림을 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로 내버려두렴. 상관없다.

  그러나 그에게 그 그림을 한번 보여주기는 해라.

사람들에게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할 것 아니냐.

분명 "웬 쓰레기 같은 그림이냐!"는 말을 들을 게 뻔하지만,

내가 각오하고 있드 너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진실하고 정직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농촌 생활을 그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예술과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지한 반성을 하게 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다.

밀레나 드 그루 같은 화가들이 "더럽다, 저속하다, 추악하다, 악취가 난다" 등등의

빈정거림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는 모범을 보였는데,

내가 그런 악평에 흔들린다면 치욕이 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지.

농부를 그리려면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려야 한다.

농부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며 그려야 할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누구인가는 잊어야 한다. 자주 생각하는 문제인데,

농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문명화된 세계보다 훨씬 더 나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점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그들이 예술이나 다른 많은 것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가 있겠니?

  더 작은 크기의 습작도 여럿 있다. 그러나 큰 작품을 그리느라 바빠서

다른 그림을 많이 그리지 못했다는 건 너도 이해하겠지.

그림이 완성되고 물감이 마르자마자 작은 습작과 함께 너에게 보낼 생각이다.

발송을 너무 늦추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서두르고 있다.

그렇게 하려면, 그 그림의 두 번째 석판화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이 그림에 대한 포르티에 씨의 보증서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 그림에 너무
빠져 지내느라 이사해야 한다는 것도 잊을 뻔했다.

이사에도 신경을 써야 했는데...이사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장르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워낙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다른 화가보다 더 편하게 지내기를 바랄 수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그들이 어떻게든 그림을 그리는 이상

나도 물리적 어려움으로 잠시 주저할 수는 있지만

'파뢰되거나 침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아주 좋은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너도 알다시피, 근래 며칠간은 물감 때문에 고생했다.

물감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는 그림을 망칠 각오를 하지 않고는

붓질 한 번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정할 때는 작은 붓으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해야 했다.

가끔 그림을 친구에게 가져가서 혹시 내가 그림을 망치는 건 아닌지 물어본 것도

마지막 손질을 그의 작업실에 가서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너도 이 그림이 독창적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네 생일에 맞추지 못한 것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1885년 4월 30일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중에서 -

 

 

 

- <감자 먹는 사람들> 26.5x30.5cm .1885년 4월. 석판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