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있을 때, 주를 찬양하여 감사한 삶이 되시길(샬롬이)

**감동의 글

366번의 비밀/정영진<리디십 박사>

샬롬이 2012. 11. 4. 21:45

 

 

 

 

 

 

366번의 비밀

 

 

 

/정영진<리더십 박사>

 

 

'할 수 있다, 잘 될 것이다'라고 결심하라.

그러고 나서 방법을 찾아라.

-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in) -

 

 

 <하나님의 지하운동>은 범브란트 목사가 쓴 책이다.

그는 루마니아가 공산통치 아래 있을 때 박해받던 지하교회의 목사였는데

공산화 된 후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14년간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온갖 고문과 학대를 받았다. 3년간은 빛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독방에서 지냈다.

믿음으로 소망을 잃지 않고 견뎌냈지만 결국 사형언도를 받고 말았다.

 

  범브란트 목사는 낙심이 되었다.

원망스러운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나님! 하나님 앞에 바르게는 살지 못했어도 하나님 뜻대로 살아보려고 애썼는데

이렇게 처참하게 형자의 이슬로 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까?

  보고 싶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성도들의 모습에 목이 메었다.

그리고 죽음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과 두려움으로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깊은 밤, 범브란트 목사는 이생의 마지막 시간을 생각하며 기도를 드렸다.

그때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종아, 성경에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라는

말이 몇 번이나 쓰여 있는지 알고 있느냐?"

 

  범브란트 목사는 가슴에 품고 있던 성경책을 꺼내어 읽고 또 읽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고 난 후에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366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성경에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는 말을

366번이나 기록한 뜻을 알겠느냐? 1년 365일 하루도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기록해 놓았느니라."

  범브란트 목사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자신이 하나님을 바로 믿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믿음이란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것인데 떨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하나님! 1년은 365일인데 왜 366번을 기록하셨습니까?"

주님께서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것 아닌가?

"사랑하는 종아, 너는 4년마다 한 번씩 윤년이 돌아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냐?

윤년이 돌아오면 2월 29일이 되어 그때는 366일 되지 않느냐?"

범브란트 목사의 마음에는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감사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원망이 찬송으로 바뀌었다.

근심이 평안으로 변했다.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새로워졌다.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안심이 되었고 미움과 증오가 사라지고

사랑스러움과 따뜻한 마음으로 변화되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믿는 구석이 있으면 목에 힘을 주고 사는 법인데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이 희망 없이 살아서야 되겠는가?

범브란트 목사는 '감옥은 나의 사역지'라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

예전에는 차디찬 벽, 쇠창살, 손과 발을 묶는 사슬 그리고 고문하는 자들과

고문기구들을 볼 수 있었지만, 마음이 담대해진 이후로는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를 볼 수 있었고 자신의 생애에 있었던

아름답고 사랑스런 토막 이야기들을 되살려 볼 수 있었다.

 

  범브란트 목사와 그의 동료들은 신앙과 평화와 기쁨을 감옥 안에서도 지킬 수 있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조차도 좋은 것을 보고 상상하고자 했던 그들을

공산주의자들의 고문도 어쩌지를 못했다고 회고의 말을 남겼다.

 

  리더는 걱정하지 않는다. 리더는 염려하지 않는다. 리더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 믿는 배짱이 있기 때문이다. '걱정하다'라는 말이

영어로 'Worry'이다. 이 말의 본래 뜻은

'목 졸라 죽인다'라는 의미를 가진 고대영어 'Wrygan'에서 비롯되었다.

걱정은 사람의 숨통을 조여 죽게 만드는 소리 없는 살인자이다.

염려라는 뜻이 무엇인지 아는가?

염려라는 말음 마음을 갈래갈래 찢어놓는다는 말이다.

염려하고 있는 동안 인격은 분열되고

집중력은 흙덩이처럼 부서져서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걱정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내 마음 내 뜻대로 안 된다는 심리적 불만과 절망감에서 오는 현상이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일단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기로 결심하라.

두여워하지 않기로 결심하라.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웬델 필립스는 "걱정스러운 일이란 무엇인가?

단지 이것은 더 나아지기 위한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걱정스러운 일은 걱정하라고 주어진 일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기회라는 말이다.

마치 구름이 끼면 비가 올 것을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는 것이 훨씬 좋은 것이 아닌가?

내가 실패했다면 절망하고 있을 때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 야곱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파란만장하게 전개되어 있다.

야곱은 사랑하는 여자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7년 동안이나 머슴살이를 견뎌낸다.

그러나 야곱은 정작 바라고 원하던 라헬이 아니라

매력도 관심도 없었던 레아와 결혼했다.

야곱은 실패했는가? 성경은 야곱이 결혼 첫날밤을 보낸 레아를 통하여

생산한 유다가 메시아의 혈통을 이어가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금덩어리를 원했는데 손에 돌덩어리가 잡혔다고 절망하지 말자.

 

그래도 한다. 또 실패한다. 상관없이 또 한다.

다신 실패한다. 좀더 나은 실패를 한다.

-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

 

 

당장 내 뜻대로 안 되었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마라.

 걱정도 염려도 하지 마라. 두려워하지도 마라.

욥은 환난과 근심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다윗은 생사를 알지 못하는 위기의 순간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시57:2).

잘못도 없이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위협을 당하며

병든 몸을 이끌고 살았던 바울의 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제자들에게 버림당하고 은혜 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며

십자가에서 홀로 피 흘리며 살 찢겨 죽어가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리더는 걱정하지 않는다.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도 않는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갈 뿐이다.

 

 

겨울이 되어야 어떤 나무가

 정말로 푸른지 알 수 있듯이

역경이 몰아칠 때 한 개인 혹은

한 국가가 얼마나 튼튼한지 알 수 있다.

- 케네디(John F. Kenned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