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의 <대장간>
대장장이
/에밀 졸라(Zola Emile. 프랑스)
그 마을에서 덩치가 가장 큰 사람은 대장장이였다.
그는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검은 머리가 덥수룩하게 나 있었다.
또 목소리가 우렁차고 웃음소리도 매우 호탕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의 가장 큰 매력은 어린아이의 눈처럼 천진난만하게
빛나는 파란 눈이었다.
오랫동안 대장간에서 일을 해 생긴 그의 탄탄한 근육을 보면 그가 벌서 쉰 살을
념겼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아가씨`라고 불리는 45킬로그램짜리 쇠망치를 가뿐이 들어 올린다.
그 커다란 쇠망치를 휘두르며 쉬지 않고 마을을 몇 바퀴나 돌 정도로 힘이 넘쳤다.
나는 운 좋게도 1년 동안 이 대장장이와 함께 살았다.
그때 나는 병에 걸려서 요양을 해야 할 처지였다. 몸과 마음이 더 망가진 상태에서
집을 떠나 아무 목적도 없이 쉴 곳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지고 날이 저물어
길을 잃었는데 우연히 그 마을로 들어 서게 됐다.
저 멀리 불꽃이 훨훨 타오르고 있는 대장간이 보였다.
나는 사거리에 처량하게 걸터앉아 멍하니 대장간을 바라보았다.
대장간 불꽃 때문에 거리가 온통 횃불처럼 밝게 빛났다.
대장간에서 들려오는 쇠망치 소리는 마치 쇠로 만든 기마병들이 적진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처럼 웅장하게 들렸다. 어느새 나는 대장간 앞으로 걸어갔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불꽃이 일고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소리가
울리는 곳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빨갛게 달아오른 굵은 쇠를 구부리고 있는 대장장이를 보았다.
그 신성한 노동의 현장을 바라보며 나는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대장장이가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뚝딱하고 금방 쟁기 하나를 만들었다. 대장자이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쇠망치를 휘둘렀다. 민첩한 그의 몸놀림에 `아가씨`는 계속 원을 그리며 돌아갔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그의 몸에서는 탄탄한 근육과 철근 같은 갈비뼈가 돋보였다.
스무 살쯤 되는 대장장이의 아들도 그와 함께 일을 했다.
아들은 빨갛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꺼내 두드렸다. 탕, 탕, 탕, 탕,
`아가씨`가 모루(대장간에서 불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에 떨어질 때마다 쟁기가 하나씩 만들어졌다.
쇳덩이처럼 붉게 달아오른 대장장이의 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래도 그는 손에서 망치를 내려놓지 않는다. 한참이 지나고 사방이
조용 해지자 대장장이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날 저녁 나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대장간의 다락방에 짐을 풀었다.
다음 날 새벽 5시, 동이 트기도 전에 집안이 떠나가라 울려대는 굉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잠에서 깼다. 다락방 아래에서는 쇠망치가 벌써 춤을 추고 있었다.
`아가씨`가 온 집안을 뒤흔들어 놓으며 나를 침대에서 끌어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서는 벌써 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풀무(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도 반짝거렸다.
마치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파랗고 빨간 불곷이 솟아올랐다.
대장장이는 쇳덩이를 옮기고 나서 이미 만들어 놓은 쟁기에 흠집은 없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나를 보더니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대장장이가 내 단잠을 깨우려고 일부러 새벽부터 망치질을 헸디고 오해했다.
그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듯이 몸을 숙여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말했다.
"여기 고철 더미 속에서 생활한다면 아마 몸이 더 빨리 회복될거예요."
우리는 거꾸로 엎어져 있는 폐차 위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낮 동안 거의 대장간 안에서만 지냈다.
그러다 추운 겨울이나 비 오는 날에는 온종일 대장간에 있곤 했다.
나는 육체노동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대장장이는 쇳덩이를 마음대로 만지작거렸다.
모루 위에 놓인 쇳덩어리는 대장장이의 손끝에서 부드러운 초처럼 녹아내렸다.
나는 그의 노련함에 감동해 매번 탄성을 지르며 칭찬을 했다.
하나, 둘 쟁기가 되기 이전의 흉한 모양의 고철은 생각초차 나지 않는다.
쟁기가 불의 힘을 전혀 빌리지 않고 그저 대장장이의 손가락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대장장이의 솜씨는 대단했다.
나는 대장장이가 엄살을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하루에 14시간씩이나 일을 하면서도 항상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팔을 움직인다.
그는 피로를 모른다. 아마 이 집이 무너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한 손으로
거뜬히 집을 떠받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 되자 대장장이는 내게
"이제 이곳이 편안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여름에는 대장간 문을 열어놓으면
풀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와 무척이나 상쾌했었다.
게다가 석양이 질 때 문 앞에 나가면
광활한 계곡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도 볼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채소밭이 끝없이 펼처진 멋진 풍경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행복했다.
대장장이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항상 근처의 농토가 모두 자신의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자랑을 했다. 그의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쟁기가 이 일대에서 쓰인 지가
벌써 200년이 훨씬 넘었다는 사실은 대장장이에 대단한 자부심이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저렇게 많은 곡식이 어떻게 자랐을까?
들판은 5월에는 푸른빛으로 7월에는 황금빛으로 물든다
대장장이가 만든 쟁기가 이렇게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아름다운 들판을 만들었으므로
당연히 대장장이의 공도 꽤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식을 사랑하듯 농작물을 사랑한다.
예컨데 햇갈이 좋은 날에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고, 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릴 정도이다. 그는 저 멀리 자신의 등보다도 작아 보이는 토지를 가리키며
나에게 말한다. 언젠가 그 귀리 밭을 가꿀 쟁기를 꼭 만들겠다고...... .
농번기가 되면 가끔 대장장이도 쇠망치를 내려놓고 대장간 밖으로 나간다.
그는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들판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나는 그가 만든 수많은 쟁기가 논밭을 일구는 것을 보았다.
쟁기를 매단 소는 마치 천군만마를 등에 없은 장군처럼 앞을 향해 나아가며 밭을 일군다.
쟁기도 햇빛을 받아 은색으로 반짝이고 대장장이는 나에게 손을 흔든다.
나는 그가 만든 쟁기가 얼마나 `신성한 노동`을 하고 있는지 실감한다.
내 다락방 아래에 있는 것은 모두가 다 땡그랑 땡그랑 소리를 내는 철재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몸 안으로 철분이 쌓일 것이다.
이 철분은 약구에서 파는 약보다 더 효과적으로 내 병을 치료해 준다.
나는 대장간의 소란스러움을 좋아한다. 나는 쇠망치가 모루를 두드리는
소리를 좋아하며 그 소리를 들으며 `인생의 참맛`을 느낀다.
풀무의 우렁찬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진다. 내 몸과 마음도 차츰 회복되어 간다.
탕, 탕, 탕, 탕, 쇠망치 소리는 나에게 유퇘한 시계우 소리가 된다.
대장간이 조용해지면 내 모릿속도 조용해진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대장장이를 보면서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하찮은 일인지 새삼 부끄러워진다.
태양이 작열하는 오후가 되면 대장장이의 모습이 더욱 멋져 보인다.
매끈한 몸매와 탄탄한 근육이 마치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만든
생동감 넘치는 거대한 조각상 같아 보인다.
예술가들이 그리스 사자(死者)의 몸에서 찾은 현대 조각의 선을 나는 대장장이의
몸에서 찾아냈다. 나는 모르는 사이에 노동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대장장이는 영웅이다. 대장장이는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밝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영웅이다.
그는 피곤을 모르는 이 시대의 아들이다. 그는 쇠망치로 연극을 하고있다.
온 힘을 다해 `아가씨`를 만지며 즐겁게 기분전환을 한다.
나는 장밋빛 용광로에서 찬란한 빛이 처지고 우레아 같은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연극을 보면서 노동하는 사람의 고귀한 숨소리를 듣느다.
이전에 나는 게으르고 의심이 많은 편이었는데, 대장간의 수많은 쟁기 속에서
이런 단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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