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5 매시 업/ Mash up
섞어라, 버무려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융합과 진화의 메커니즘>
젊은이여,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듯
나의 몸과 영혼을 버무려라,
먼 데 있는 것은 가까이로
낯선 것은 친숙한 것으로 발효시켜라,
냇물과 짠 바닷물이 어우러지는 경계를
헤엄치는 송어의 은빛 비늘을 세우고....
- 이어령 미발표 시집에서 -
매시 업은
리믹스와 샘플링 같은
음악 혼햡 제작 기법을 일컫는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섞이고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
혹은 전혀 새로운 하나로 탄생하는 것은 우리를
또 다른 창조의 세계로 이끈다
1, 서로 다른 것끼리의 만남
`매시 업` 로고를 찾아
여러분, 이런 괴상한 로고를 본 적 있나요?
두 개의 아치형 대문처럼 보이는 것은 영어의 M자를 딴 것이고,
탑처럼 위로 솟은 화살표는 위로 올라가는 up의 표시입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매시 업 mash up`이라는 음악 양식을 나타내는 로고입니다.
`mash`는 섞다/결합하다의 뜻으로 두 개 혹은 여러 개의 음원을 합성해
새로운 곡을 만드는 음악제작 기법을 일컫는 말입니다.
미국의 음악프로듀서이자 가수인 데인저 마우스가 그 원조라고 합니다.
은퇴를 선언하고 DJ를 할 때 그는 엉뚱하게도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 The white album>의 곡에 랩 가수인 제이 지의 <블랙 앨범
The black album>의 랩 일부를 붙여서 새로운 곡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름도<그레이 앨범 The gray album>이라 붙인 것을 보면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르려 했는지 분명해집니다.
백인이 부른 `화이트` 곡에 흑인이 부른 `블랙`의 가사를 혼합해서
`그레이` 의 잡곡(雜曲)을 낳은 것. 그런 시도야말로
매시 업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양식의 음악이 힙합계를 덮치면서 젊은 층에
파고들기 시작한 것을 보아도 분명 매시 업은 21세기 융합문화의
트랜드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21세기의 아이콘 융합기술 문화
팝뮤직을 잘 모르는 내 귀에조차 매시 업이란 말이 솔깃하게 들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화학기호처럼 멋대가리 없는 로고가 내 눈에 낙인처럼
찍힌 것도, 그것이 오늘의 젊은이들이 따라가고 있는 `안내판` 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음악만이 아닙니다. 비디오 아트, IT의 웹 서비스,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신상품들 거의 다가 융합기술 제품이 아닌 게 없습니다.
지금 각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조합어들을 한번 추려보세요.
자장면과 스파게티가 융합한 `짜파게티`의 퓨전 음식에서부터
교육과 오락이 쿵친 `에듀네인먼트`, 팝송과 오페라가 결합해 `팝페라` 가 되는
크로스오버의 전위 예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매시업이 존재합니다.
최첨단 기술 역시 IT Information Technology , BT Bio Technology,
NT Nano Technology가 세 쌍둥이처럼 뭉친 융합기술이고,
최신 휴대폰 또한 전화를 걸고 사진을 찍고 문자를 날리는
컨버전스 상품으로 시장을 덮고 있지요. 심지어 어지간해서는 유행을 타지 않는
점잖은 학계에서도 생물학을 비롯해 자연과학이 인문학과 동거를 시작한
`consilience (통섭)` 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이 지진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미 알려져 있는 것들을 결합하여 지금까지 누구도 모르고 있던
새로운 효능과 가치를 창출하는 기법, 그리고 그 정신이 M자 위의 화살표처럼
오늘의 젊음을 업그레이드하는 비밀 병기, 즉 매시 업입니다.
패러디는 즐겁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매시 업 같은 융합문화는 태곳적부터 있어 왔습니다.
우리 옛 애국가만 해도 스콜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 Auld Lang syne>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가시를 붙인 매시 업이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여러분에게는 잘 알려진 곡조에 이상한 가사를 붙여서
노래 부르던 어릴 적 기억도 있을 겁니다. 1970년대 대학가에서 꽤 유행했던
`노찾사` 의 운동권 노래란 것도 찬송가나 가스펠 곡조에
가사를 살짝 바꾼 노래들(노가바)이었습니다. 멀리 갈 것 없습니다.
지금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이미 있는 노래나 영상을 합성하여
래러디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패러디를 만드는 매시 업은
`세븐업` 처럼 청량음료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독소도 많아
지하 문화의 위험한 마그마이기도 하지요
그러한 패러디는 거의 모두가 매시 업의 초보 단계라고 보면 됩니다.
친숙한 것을 낯선 것과 섞고, 고상한 것을 상스러운 것과 비비고,
딱딱한 것을 부드러운 것과 버무리는 기술,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DNA,
특히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에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노래만 아니라 이솝 우화의 이야기도 패러디한 버전들이 많습니다.
각국마다 서로 다른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의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고 있는 거지요.
이솝 우화의 뉴 버전 <개미와 베짱이>
이솝 우화를 뉴 버전으로 매시 업한 이야기를 같이 읽어보기로 합시다.
첫 번째는 일본 버전입니다.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자 베짜이는 먹을 것을 찾아 집을 나섭니다.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고 놀았던 탓에 비축해둔 양식이 한 톨도 없었지요.
하는 수 없이 베짱이는 구걸하기 위해서 개미집 문을 두드립니다.
한 번 두 번 점점 세게 두드려 봤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베짱이는 문틈을 비직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여름내 벌어들인 양식이 곡간에 그득히 쌓여 있는데 개미들은 한마리도
보이질 않는 겁니다. 여름내 너무 일만 한 탓에 모두 다 쓰러져 과로사로
숨을 거둔 것이었습니다. 베짱이는 신이 나서 배부르게 먹고
노래하고 춤추며 겨울을 편안히 났습니다.
이 새로운 이솝 우화는 일중독에 걸린 일본인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일만 하고 쓰지는 않는 일본인들은 저축률 15 퍼센트에 개인 금융자산
1천 3백조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세계 기록을 세웠지만 `잃어버린 십 년` 이라는
불황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개인 소비가 국내총생산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자의 천국답게 미국 버전의 베짱이 이야기는 일본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미국 우화의 베짱이 역시 개미집 문을 두드리는 대목까지는 다름이 없지만
그 다음이 아주 놀랍지요.
베짱이는 개미집 문을 역심히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욕만 먹고 쫓겨났지요. 춥고 배고프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베짱이는 죽기 전에 즐거웠던 지난 여름날을 추억하며
기력을 다해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연주는 유난히 슬프고 감동적이었지요.
여름내 일만 하느라 음악에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내던 개미들은
비로소 베짱이의 음악에 매료되어 모여들었습니다.
베짱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지요.
재빨리 개미의 무리를 향해"Ticket Please!(입장권을 내라" 고 소리쳤습니다.
결국 베짱이는 겨울마다 리사이틀을 열어 마이클 잭슨 같은 큰 부호가 되었습니다.
옛 소련의 우화는 어떨까요?
위의 두 이야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베짱이도, 개미도 모두 굶어 죽는다는 점입니다.
구소련의 붕괴를 패러디한 이솝 우화의 새 버젼은 이렇게 끝납니다.
개미들은 밖에서 떨고 있는 베짱이를 보자
위대한 사회주의 공화국의 이념을 전 세계에 고하기 위해서
플래카드를 걸고 환영합니다.
"베짱이 동무, 이제 우리 집단 노동장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먹는 동무가 된 것을 환영합니다."
그러고는 개미들은 베짱이를 당원으로 받아들여 성대한 파티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덩치 큰 베짱이가 객식구까지 데려오는 바람에
며칠 안 가 비축한 식량이 바닥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겨울을 나기도 전에 그들은 모두 굶어죽고 말았지요.
파이가 없는 분배는 결국 가난과 죽음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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