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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글

<불완전함에 대한 저항, 울음>/ 이어령

샬롬이 2010. 10. 11. 10:44

 

 

 

<불완전함에 대한 저항, 울음>

 

 

                                      /이어령 교수

 

 

"인간이란 무엇인가."

플라톤은 그의 <향연>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묻는 것 자체가 벌써 인간에게는

빈칸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신도 동물도 그런 질문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질문에 대한 대답도 자연히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완전을 구하는 존재"라는

역설적인 정의가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자신에게 없는

다른 반쪽의 분신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에로스, 즉 남녀의 사랑이라 풀이하고 있지요.

결혼식 주례사에 이따금 등장하는 우리의 비익조(比翼鳥)와 흡사한 이야기입니다.

이 전설의 새는 한쪽 날개만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다른 쪽 날개를 가진 새를

만나 짝을 이루지 못하면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람끼리의 빈칸 채우기라면 사랑 이야기나 부부 이야기로

해피엔딩이 되었겠지만, 인간의 결함 구조는 젠더(性)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데서 많은 문제가 일어납니다.태어나는 아이들을 보십시오.

그렇게 요란스럽게 울며 태어나는 짐승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까.

산도에 비해 태아의 머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어떤 짐승보다도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산파의 도움 없이는 태어날 수 없는 동물입니다.

오늘날에는 제왕절개 수술이나 인쿠베이터 같은 특수한 생존장치가 없으면

몇몇 아이들의 출산은 곧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태어날 때만이 아니라 아이들은 계속 시끄럽게 울어대지 않고서는

한시도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배고파서 울고 불편해서 울고 부족해서 울지요.

이 울음을 멈추기 위한 장치, 그것이 문화이고 문명이고

그 많은 사회제도라고 할 것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본격적으로 해답을 찾고자 한 것이`인간학`입니다.

그 기초를 닦은 헤르더는 플라톤과 같은 관념적인 접근이 아니라,

인간의 구체적인 신체 결함을 그 분완전성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이 존재의 결여감에 대해 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그냥 울보만은 아닌 까닭은

그 빈칸을 채울 수 있는 창조적인 꿈과 재능을 지녔다는 데 있습니다.

울음소리만으로는 의사전달을 할 수 없기에 언어가 만들어지고,

독수리같은 날개가 없으니 비행기를 만들었고.

물고기의 아기미가 없어 잠수함을 만든 것입니다.

 

                                             <빈칸의 불안과 자유>

그러니 빈칸이 있다면 채워야 합니다.

젊은이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해서 하루하루를 빛의 언어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랑하고 생각하고 감동하고, 때로는 사전에도 지도에도 없는 낱말들을

나만의 이야기를 엮어가야 합니다. 조금은 문법에서 어긋나고 철자가 맞지 않아도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나의 삶을 조금이라도 놀랍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만한 일탈은 젊음의 이름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상력이 고갈되고 창조력이 부족할 때에는 오히려 그 공백들이 위험한

덫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빈칸 자체가 이미 자유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빈칸을 메워야 한다는 것이 강박관념이 되어 나를 압박할 수도 있습니다.

빈칸 옆의 글자들은 처음부터 나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제한하는

음흉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훼방꾼일 수도 있습니다.

  밀크와 실크의 이지선다형 문항처럼 아예 먹고 입는 물질적 선택으로만

그 대답이 제한되어 있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역사라는 큰 이야기의 작은 토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절망할 때도 있겠지요.

 

                                      <쓰레기통 같은 인간의 유전자>

  인간에 비해서 꿀벌은 처음부터 완결된 `생물`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자나 분도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육각형 구조의 벌집에는 한구석의 빈틈이란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수정할 수 없는 완결된 문장과도 같아서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벌꿀에겐 언어도 도구도 필요 없으며, 더 가르칠 것도 없습니다.

   가르칠 것이 있다는 것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이고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거기에서 개체라는 것이 생기고 창조력이 움틉니다.

개만 해도 꿀벌보다 조금은 빈칸이 있기 때문에 훈련을 시킬 수 있지요.

꿀벌이 서커스를 하는 것은 본 적이 없지만 개들이 개답지 않은 재주를 보이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야생의 곰이나 코끼리라고 해도

조련사의 훈련에 따라서는 훌륭한 서커스단의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헤르더가 현대에 태어난다면 더 좋은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를 쓰레기통에 비유하여 `정크`라고 부릅니다.

불필요한 거들이 유전자 안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장균의 경우에는 어떤 허드레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아주 깨끗하지요, 그래서 대장균은 언제나 대장균인 채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정크 때문에 여타의 생물들과는 다른 변화와 다양성

그리고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됩니다.

 

                                      <인간은 깨지기 쉬운 유리 그릇>

 

  희랍 신화에 의하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 무기와 기술이

부여되지 않았기에 불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완전하고 부족한 시기가 계속되는 지난 몇만 년 동안 인간은 활을 쏘고

불을 사용하는 과정을 통해 화약과 총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송곳니가 없어도 발톱이 없어도 늑대와 사자를 이길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결핍을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음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지위는 역전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간은 약한 갈대입니다 .

미국 전역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암치료 전문의 루이스 토마스의 자서전 제목은

<인간은 깨지기 쉬운 종(種). the Fragile Species >입니다.

비행기가 짐을 싣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지요. 여러 짐들 가운데 유독 유리컵

아이콘에 X 표를 칠한 ` FRAGILE`의 빨간 꼬리표를 단 짐짝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 지구호의 짐칸에 실린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다른 생물들은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다 제 나름대로 앞가림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이 의사가 없이는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운 요주의 꼬리표가

달린 유리 그릇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