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있을 때, 주를 찬양하여 감사한 삶이 되시길(샬롬이)

**시의 나라

향수/정지용

샬롬이 2018. 9. 20. 09:12





향수




/정지용. 충북 옥천.

(1902.6.20~1950.9.25).

1926년 학조 창간호 '카페 프란스',

백록담,문학독본,산문.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