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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글

선비 생각이 상商과 만나다/이어령

샬롬이 2015. 3. 19. 14:29

 

 

 

 

 

선비 생각이 상商과 만나다

 

 

 

 

/이어령

 

 

 

 

'정신 자본주의' 를 다른 이름로, 가장 한국적으로 부른다면

'선비 자본주의' 로 부를 수 있다.

21세기는 '지식상인의 시대' 라고 한다.

선비의 사士가 상商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원숭이와 고릴라의 DNA는 인간과 98.5%가 같다.

그러니까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는 1.5%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인류의 원조라고 하는 네안데르탈인도

오늘의 인간이 호모사피엔스와 만년 이상 곤종해왔다.

그런데 빙하기가 지나면서 이들은 지구상에서 전멸하고 말았다.

원숭이나 네안데르탈인이 사람처럼 되지 못한 것은

멀리 걸어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서 호모사피엔스는 생활환경이 100km 이상이나 된다.

 

즉 멀리 떨어져 있는 데까지 가서 자료를 구해오거나

물건을 교환할 수 있는 보행능력과 정보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이 직립해야만 되었던 것도 멀리 이동하고

물건을 운반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행능력과 정보의 힘을 가장 잘 이용한 것이 바로 상인이었다.

우리의 옛날이야기에는 산골 깊숙이 밤길을 걷다가

여우에 홀리는 사람들은 대개가 다 소금장수로 되어 있다.

바다에서 그 첩첩산중까지 무거운 소금을 지고 산길을 뚫고 들어가는

모험정신이야말로 보부상을 비롯한 모든 상인들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상인이라는 말부터가 그렇다.

상商나라가 망하자 땅을 잃은 유맹流氓들은

사방에 흩어져 물건을 만들어 파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수레와 말을 이용하여 물건들을 먼 곳으로 운반해 팔아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때처럼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길을 통해 집시처럼 살아가는 대상들이 나타나 동서를 왕래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나라 사람들이 생각해 낸 직업이라고 하여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물건을 파는 것을 '상고商賈'라고 하는데

상商은 돌아다니며 하는 것을 의미하고 고賈는 창고와 같은 것에

상품을 쌓아 놓고 한 곳에서 장사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상업이라는 말은 있어도 고업이라는 말은 없는 것을 보면

상인정신이란 역시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보행과 정보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인간의 모든 길은 상인들이 개척한 것

 

시대가 아무리 변화해도 상업의 비즈니스 마인드는 변하지 않는다.

옛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시민사회의 시대에서는

상이 그 최하의 계층으로 손꼽혔지만 그런 시대에서도

인간 고유의 특성인 보행능력과 정보의 힘을 지키고 발전시킨 것은 상인들이었다.

상인들의 보행과 정보의 힘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한 것이 바로 길의 문화이다.

 

소금장수의 길에서 실크로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길은 상인들이 개척해 간 것이다.

불교와 기독교가 발생하고 그것이 널리 전파된 것도

실은 상인들이 닦아 놓은 그 길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룬비니에서 간디스 중류지역까지 석가가 걸어간 500Km의 길이요,

예수가 나자레에서 예루살렘까지 횡단한 150Km의 길이다.

불도佛道와 기독교의 그 길은 속세의 상도商道를 타고 발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종교만이 아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에서도 미지의 땅을 발견하고

그 곳에 새로운 길을 트이게 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장사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소설의 원조라고 말해지는 다니엘 디포Daniel Defoe의 <로빈슨 크루소>도

전형적인 영국 상인이 벌이는 무인도에서의 모험담이다.

소설가는 <완전한 영국 상인Complete English Tradman>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대의 상인은 보련적인 학자이다.

그는 라틴어나 그리스어 등의 보통 전문가보다는 높은 식견을 지니고 있다.

상인은 책 없이도 언어를 알고 지도의 도움 없이도 지리학을 안다.

그들의 교역의 통로는 전 세계에 퍼지고 그들의 외국거래와 수표계약은

모든 나라의 말로 통한다. 그들은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앉아 있어도

모든 국민과 어울려 이야기를 한다."

 

상업을 멸시한 동양의 소설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은

상인이 그 주인공을 차지하고 있다.

청나라 때 문헌인 <경화록鏡花錄>은 <걸리버 여행기>처럼

해양 상인이 상선에 동승하여 대인국. 무장국. 무계국. 소인국 등을 섭렵하여

결국엔 여아국의 여인들만 사는 나라에 가서

여황제의 후궁노릇을 하는 이야기이다.

기존의 남녀 역할이 역전된 세계를 보여준 것으로

남존여비사상을 뒤엎는 근대의식의 시작을 반영한 모험담이다.

 

士는 0차 산업

 

소득 수준이 오르면서 노동력의 비중이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 그리고 3차 산업으로 옮겨간다.

1차 산업은 농업. 임업. 수산업 등 체취산업이고

2차 산업은 제조업. 건설업. 등이고

3차 산업은 상업의 유통과 서비스업을 가르킨다.

 

17세기 때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는

 그 자신이 뱃사람. 행상인. 군의 등의 직업을 두루 전전한 사람인데

"농법보다는 제조업이, 제조업보다는 상업이 훨씬 이득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잉글랜드의 농부는 일주일에 4실링

(영국의 옛 화폐단위, 1파운드가 20실링)밖에 벌지 못하는데

바다를 향해하는 수부들은 12실링을 번다.

한 사람의 수부는 3인의 농부에 상다하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콜린 클라크가 1. 2. 3차로 산업을 구분 짓고

각국의 노동력 비중의 변화를 분석했다.

윌리엄 페티가 지적한 산업 간의 소득격차가 원인으로

노동력의 이행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체계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농. 공 상만을 대상으로 한 것일 뿐

지식을 업으로 하는 사士는 제외되어 있다.

사가 하는 일, 언론이나 예술 그리고 학자들이 종사하는

지식업은 어떤 사업에 속하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을 0차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생산하는 것은 꿈, 감동 그리고 즐거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산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그 동안 한국 사회 그리고 동야 사회를 지배해 온

사농공상士農工商을 서구식 노동과 경제활동의 분류 코드로 분석하면,

사士는 0차 산업으로 지식knowledge,

농農은 1차 산업으로 지혜wisdom,

공工은 2차 산업으로 기술craft,

상商은 3차 산업으로 정보information의 영역으로 정리할 수 있다.

 

선비의 사士는 공자의 말대로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지식인으로 문자를 비롯한 각종 지식 미디어의 힘과

그것을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농민들은 <북학의>를 쓴 박제가朴濟家의 말대로

기후와 계절 같은 하늘의 힘과 논밭과 같은 땅의 힘

그리고 그 곳에 씨를 뿌리고 곡식을 가꾸는 사람의 힘인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슬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모르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이다.

 

한편 공工은 말할 것 없이 손재주를 비롯하여

물건을 만들고 발명하는 능력인 기술에서 나온다.

산업사회의 기계와 공장을 움직이는 능력인 것이다.

그런데 상업은 앞서 말한대로 길이라는 교통의 네트워크를 정보망 삼아

일찍부터 코스모폴리탄처럼 국경 없는 무한공간을 왕래했다.

그러나 상은 정보를 토대로 이루어진다.

 

제 3의 물결에서 익히 들어왔던 대로

인류문명의 첫 번째 물결은 농업을 중심으로 한 농경문명,

두 번째 물결은 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문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 번째 물결은 그냥 정보문명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정보는 네안테르탈인이나 침팬지와 다른

인간의 보행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단연코 상업에 속하는 능력이다.

사. 농. 공. 상 가운데 역사적으로 그 보행능력과 정보능력을 극대화한 것이

상인들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해도 좋다.

그렇다면 세 번째 물결인 오늘날의 디지털 혁명과

그 정보문명의 블랙홀에는 두말할 것 없이 상商이 있게 된다.

그것이 지금 우리 누앞에 엄청난 폭발력으로 다가선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의 세계시장이다.

 

20세기만 해도 상업은 공업에 의존하여 발전해 왔지만

21세기의 상업은 공업만이 아니라 0차 산업인 지식 즉 사士와 손 잡는

지식정보의 독특한 산업으로 변화하게 된다.

되도록 멀리 세계의 끝을 향해 나가려던 인간의 꿈,

상인의 그 꿈은 단순한 보행능력이 아니라 인터넷이나 뉴미디어와 같은

디지털 네트워크에 의해서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지식정보사회 그리고 모든 경계가 무너지는

'무경계borderless'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상업은

단순한 정보만이 아니라 고도의 지식을 갖지 않고서는

시대의 환경에 대응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지식정보 시대를 다를 말로 옴기면

지금까지 가장 사이가 멀었던 사와 상이 처음으로 손을 잡은

'사士 . 상商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은 공과 상이 손을 잡아 성공을 거두었다면

정보혁명의 시대는 사와 상 즉, 지식과 정보가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모델에 의하며 전개된다는 점이다.

 

지식과 상업의 결합

 

더 이상 상업과 서비스업은 전통적인 3차 산업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0차 산업인 지식문화와 어울리는 통합적인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니까 1차. 2차. 3차 직석으로 전개해 오던 산업은 더 이상 선이 아니라

상호 순환하는 원형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지금까지 세계가 지향해 온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원리는

군사력과 경제력이었다.

직식은 오직 부국과 강병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뿐

지식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은 앨빈 코프러Alvin Toffler의 지적대로

경제력이나 군사력의 부수적 요소에서 그 자체의 본질로 변했으며

독자적인 지식의 지배라는 새로움 힘을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는 경제계에서도 문화자원, 문화자본(사회자본)과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력은 토지나 공장이나 설비 같은

하드의 자원보다 지적 능력이나 서비스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기계를 움직이는 기술보다 그 기계를

어디에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에 더 많은 힘이 실려 있다.

지식, 정신, 문화, 그리고 선비士, 이 모든 것이

한국의 경제 속에 어우러져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인

'선비 자본주의', 나아가 '사 . 상 士. 商 자본주의'로 거듭 태어날 때,

한국의 자본주의의 미래는 다시금 희망찬 항해를 계속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낼 힘과 지혜를 우리의 머리와 가슴 속에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 . 상 자본주의'에 걸맞은 정신이 우리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 <생각>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