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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글

모성 본능/베르나르 베르베르

샬롬이 2014. 5. 3. 03:15

 

 

 

 

 

모성 본능

 

 

 

 

/베르나르 베르베르

 

 

 

 

많은 사람들은 모성애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19세기 말까지 서양의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녀들을 유모에게 맡겨 놓고는 더 이상 돌보지 않았다.

시골의 아낙네라고 해서 아기에게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아기를 얇은 천에 돌돌 말아서 아기가 춥지 않도록

벽난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벽에 매달아 두곤 했다.

유야 사망률은 대단히 높았고 부모들은 자기네 자녀가 청소년기까지

살아 남을 확률이 2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것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였다.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서양의 정부들은 이른바 <모성 본능>이라는 것의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 이익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인구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학대받고 매를 맞는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게 되면 결국 나라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된 거였다.

사람들은 육아에 관한 새로운 정보와 지병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들을 개발하고 널리 보급하였다.

소아의 질환과 관련된 의학 분야에서도 점진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럼으로써 부모들은 자녀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을까 봐 염려하지 않고

마음껏 애정을 쏟아도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런 사정에서 <모성 본능>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팬티형 기저귀, 젖병, 분유, 유아용 변기, 장난감 등

육아와 관련된 새로운 상품들이 등장했고,

산타클로스의 전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유아용품 제조업자들은 다양한 광고를 통해서

책임감 강한 어머니들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고,

아이의 행복은 현대적인 이상의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모성애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본능적인 감정으로 치부되며,

너나없이 그것을 표현하고 요구하고 있는 판국에,

아이들은 좀 컸다 싶으면 어머니가 자기들을 제대로

돌봐 주지 않았다면 원망하기 일쑤다.

심지어는 정신분석가를 찾아가서 어머니에 대한 자기들의

유감과 원망을 마구 쏟아 내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