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있을 때, 주를 찬양하여 감사한 삶이 되시길(샬롬이)

**감동의 글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이어령

샬롬이 2013. 8. 7. 11:02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이어령

 

 

 

 

나무의 한가운데를 톱으로 자르면 동심원의 나이테 무늬가 나타난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이 장작을 팰 때처럼 나무를 세워놓고 자르면

그 동그라미들은 온데간데없고 물결처럼 흐르는

나무결의 곡선 모양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나무로 죽창을 만들 때처럼

사선으로 비스듬히 쳐다보면 동그라미도,

줄 무늬도 아닌 타원형 파문이 생겨난다.

 

같은 통나무인데도 자르는 방식에 따라

이렇게 전연 다른 무늬가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네 삶의 무늬도 그와 같이 변한다.

슬픔이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가난이 풍요로 바뀌기도 한다.

 

나의 운명, 나의 가정 그리고 사랑과 사업,

또 이념이나 나의 조국 - 그 모든 것들이

통나무를 자를 때처럼 다르게 변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내 삶의 통나무를 잘라 보고 찍어 보고

깍아 보면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나라로 들어가는

통과 사증을 받을 수 있다.

 

 

사람의 몸은 아주 놀라울 정도로 적은 영양분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영양분을 섭취했을 때는

그것을 처리하는 장치와 방도를 모른다.

그 바람에 비만증이나 당뇨병 그리고 고혈압 같은 성인병이 나타나게 된다.

<뽀빠이>같은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원천인

시금치도 많이 먹으면 결석에 걸리게 된다.

  

사람 몸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핸드백을 열어보면 안다. 서랍을 열어보면 안다.

호주머니를 뒤져보거나 신발장이나 옷장을 뒤져봐도 알 수 있다.

이미 용도가 폐기된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이 쓰레기나 다름없이 보관되어 있다.

그 중에는 아주 오래전에 잊혀진 물건들이

치매에 걸린 노인처럼 누워 있기도 한다.

아이들 물건일수록 버릴 것이 많다.

손과 발이 커지니 작아진 신발이나 장갑도 생겨난다.

키가 자라니 맞지 않는 옷들이 널려 있게 된다.

생각도 자라니 어제 읽던 책이나

오늘 갖고 놀던 장난감도 넝마처럼 쌓이게 된다.

 

 버려야 한다

 

 

우리도 아이처럼 매일 자란다.

그러니 조금 전까지 통했던 상식과 지식들이 쓸모없는 것으로 변한다.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던 고정관념들, 집념이나 원한도 모두 버려야 한다.

지식도 영양분처럼 넘쳐날 때가 더 위험한 법이다.

샘물은 퍼 써야만 새 물이 고인다.

고여 있는 지식도 퍼내야 새로운 생각이 새 살처럼 돋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을 메워갔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래서 발 밑에 흙이 쌓이게 되고,

당나귀는 그 흙더미를 타고 높이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정말 그렇다.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린다.

남이 진흙을 던질 때 그것을 털어버려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영혼의 발판으로 만든다.

그래서 어느 날 그 곤경의 우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을 맞게 된다.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거꾸로 된 거울 뒤 같은 세상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변화가 있다.

우물 속같이 절망의 극한 속에서 불행을 이용하여

행운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전의 기회가 있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남들이 나를 해칠지라도 두려워 말 일이다.

 

한때 인터넷에서 한창 영문으로 떠돌던 이 한 편의 우화는

나를 음해하는 진흙이 나를 구해주는 기적의 사다리가 된다는 것,

영혼이 높아지는 디딤돌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거꾸로 된 거울 뒤 같은 세상이 있다.

슬픔이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가난이 풍요로 바뀌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을 털어버리면

오히려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영혼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