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사랑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1923- ) 폴란드 태생의 여류시인
그들은 둘 다 믿고 있다.
갑작스런 열정이 자신들을 묶어 주었다고,
그런 확신은 아름답다.
하지만 약간의 의심은 더 아름답다.
그들은 확신한다.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그러나 거리에서, 계단에서,
복도에서 들었던 말들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수만 번 서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느 회전문에서
얼굴을 마주쳤던 순간을.
군중 속에서 `미안합니다` 하고 중얼거렸던 소리를,
수화기 속에서 들리던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 하는 무뚝뚝한 음성을.
나는 대답을 알고 있으니,
그들은 정녕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게 되리라.
우연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이나
그들을 데리고 장난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만남이 운명이 되기에는
아직 준비를 갖추지 못해
우연은 그들을 가까이 끌어당기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들의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웃음을 참으며
훨씬 더 멀어지게도 만들었다.
비록 두 사람이 읽지는 못했으나
수많은 암시와 신호가 있었다.
아마도 3년 전,
또는 바로 지난 화요일,
나뭇잎 하나 펄럭이며
한 사람의 어깨에서 또 한 사람의 어깨로 떨어지지 않았던가,
한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다른 사람이 주웠었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유년 시절의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공일지도.
문 손잡이와 초인종 위
한 사람이 방금 스쳐간 자리를
다른 사람이 스쳐가기도 했다.
맡겨 놓은 여행 가방이 난란히 서 있기도 했다.
어느 날 밤, 어쩌면, 같은 꿈을 꾸다가
망각 속에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모든 시작은
결국에는 다만 계속일 뿐.
운명의 책은
언제나 중간에서부터 펼쳐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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