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있을 때, 주를 찬양하여 감사한 삶이 되시길(샬롬이)

**시의 나라

국수/백석

샬롬이 2011. 1. 29. 10:58

 

 

 

국수

 

/백석(192~1963)평북 정주 출생.

1935년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함

1936년 첫시집<사슴>을 출판함.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벡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룻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 시월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어느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굴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 한 것은 무엇인가

 

 

 

멕이고:활발히 움직이고

김치가재미:겨울철 김치를 묻음 다음 얼지 않도록 그위에 수수깡과 볏짙단으로

                 나무를 받쳐 튼튼하게 보호해 놓은 움막을 말하며

                 넓은 뜻으로는 김치독 묻어두는 곳을 의미한다.

은댕이: 언저리.

예대가리밭: 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비탈밭.

산멍에: 산몽아, 전설상의 커다란 맴, 이무기.

분틀: 국수를 짜는 (분)틀.

들쿠레한: 좀 달고 구수하고 시원한.

사리워: 담겨져서.

집등색이:짚등석. 짚이나 칡덩굴로 짜서 만든 자리.

댕추가루: 당초가루, 고춧가루

탄수: 식초

아르굴: 아랫목.고담하고: 속되지 않고 아취가 있는.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白石 시집 중에서 -

                                  (시와사회 편집주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