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있을 때, 주를 찬양하여 감사한 삶이 되시길(샬롬이)

**감동의 글

세계는 우리의 장터/이어령

샬롬이 2015. 10. 12. 09:07

 

 

 

 

 

 

세계는 우리의 장터

 

 

/이어령

 

 

 

옛날 우리 소금장수들은

여우에 홀리면서도

산골 깊숙이 있는

등불을 찾아갔다.

 

한 발 한 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그들의 발밑에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오늘의 소금장수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발기를 가로막는

구미호는 무엇이며

그들이 찾고 있는

 등불은 무엇인가?

오늘의 상업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우리의 문학작품 속에 흐르고 있는 주제는

빈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가난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아주 많지요.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의 주제도

바로 가난이었습니다.

  흰 날개를 펼치고 푸른 들판의 하늘을 유유히 나는 아름다운 두루미나

황새를 보고도 예전의 아이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황새야, 황새야, 뭘 먹고 사니?

쌀 한 됫박 꾸어다 먹고 산다.

언제 언제 갚니?

장 보고 갚지.

 

이것은 가난했던 시절의 옛 동요라 치더라도

먹고 살기에 걱정이 없는 지금도 아이들은 이와 비슷한

동요를 부르고 있습니다.

 

토끼야, 토끼야, 산속의 토끼야.

겨울이 되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이처럼 한국인의 피 속에, 생활 속에, 한처럼 맺혀 있었던 것은

가난에서 오는 굶주림이나 슬픔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우리의 전설이나 신화, 노래에는 '먹는다' 는 말이 참 많이 나오지요.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이렇게 가난하게 살았으면서도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지 않았던 점입니다.

  고려 시대 때는 좀 달랐지만 조선조의 역사를 훑어보면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을까 하는

경제적인 부흥 정책을, 다시 말해 중상重商정책을

쓰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해서

글을 읽는 선비가 제일 아랫목에 앉고, 그 다음에 농사짓는 사람,

그 다음이 물건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제일 마지막은 만든 물건을

 파러 다니는 상인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양반들이 어느 정도로 상인들을 천시했는가 하면

자신들이 아무리 필요해도 그들과는 직접 거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인들이나 거간꾼들이 이 일을 담당했지요.

오히려 중국에서는 필요하면 양반들도

직접 물건을 사러 갔는데 우리는 안 그랬던 것입니다.

 

  상점을 순수한 우리말로는 가게라고 합니다.

그 가게라는 말의 뜻은 '거짓 가假'와 집 가家'를 써서

가짜로 지어놓은 집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옛날 우리들의 상업은 진짜 집에서 하는 일이 아니고

가가假家에서 임시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사신들이 와서 너희 나라에는 왜 장사하는 것을 볼 수 없느냐 하면

급히 민가에다 가가를 급조해서 상점인 것처럼 꾸미기도 하고,

길가에다 자기 집의 물건을 다 가지고 와서 파는 척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선조 시대는 역사적으로 어떤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한 5백 년 동안 아주 철저하게 중상주의나 상인들을 배제한

반상업反商業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이러한 선비 위주의 문화는 가난을 가속화시켰을 것인데,

그러한 가난 속에서 남의 나라처럼 상업을 하지 않고 어떻게 견뎌왔는지,

또 그 속에서도 어떻게 상업 문화의 전통을 이어왔는지,

오늘날 우리 생활하고는 어떤 연결점을 맺는지 하는 점을

오늘의 한국인이라면 경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궁금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눈물을 흘린,

벌써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슬픈 드라마를 보고 나서가 아니라 장창선인가 하는 레슬러가

멕시코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 기자들이

그 어머니와 인터뷰하는 장면에서였습니다.

  기자들이 그 레슬러의 어머니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얼마나 기쁘십니까?" 하고 마이크를 대니까,

콩나물을 팔아서 장한 아들을 키워낸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인 그 어머니가

"내가 콩나물밖에 평소에 못 먹였는데 쟤가 가서 은메달을 땄네요.

 잘 먹이지도 못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 하며 눈물이 글성글썽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주룩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식을 가슴 아파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정말 콩나물밖에 못 먹고 자란 한국의 아들이

과연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처럼 고기를 많이 먹고  과학적으로 훈련을 한 것도 아닌데

잘 먹고 잘사는 나라도 아니고 가난 속에서도 이겼다는 것이

얼마나 대견스럽고 가슴 아팠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우리는 빈곤 속에서 그냥 좌절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인물들을 만들었고 문학작품 속에서도 인간답게 살려고 하는

아름다운 노력들이 그려져 있음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옛날이야기 중에서도

'소금장수' 이야기를 제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소금장수가 밤낮 밤길을 걸어가닥 여우한테 홀리는 이야기지요.  

   이 소금자웃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우리의 장사하는 사람,

상업 정신인 겁니다. 내륙 지방에는 소금이 없어 필수품인 소금이 지싸게 팔리니까

험한 산길을 무거운 소금 짐을 지고 한 발 한 발 걸어간 거지요.

   이들이 딛고 간 발자국으로 해서 조그마한 오솔길이 생겼고

아무리 험하고 깊은 산골짜기라도 우리의 산야에 길이 생긴 것은

이 소금장수들이 소금 팔러 다닌 길이라는 것입니다.

   인적도 없는 위험한 산골짜기에서 여유에게 홀려 고생한다는 것은

바로 낯선 곳을 찾아 소금을 팔려 하고 캄캄한 산길에서

등불을 찾아가는 소금장수의 모험입니다.

이들의 모험 정신과 험한 길을 걷는 끈질김을 현대화한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잘살고자 하는 바로 의지이며

새로운 상업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일찌기 경제적인 데 눈을 떳더라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경제적인 부국의 위치에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가? 그러면서도 인간답게 사는 길은 어떤 것인가?

우리나라에 없었던 상업 문화가 오늘날 어떻게 꽃피었고

또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가?

 

이러한 평소의 의문을 소금장수 이야기를 통해 풀어보았습니다.

 

** 오늘날의 기업은 기술 개발 없이는 살아남기 어려운데

우리나라의 기술 개발에 있어서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일 여러분들이 상업, 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모으고

경제를 윤택하게 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산업 사회란 우리의 정신 문화나

우리의 전체적인 가치관에도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몇 가지 이야기를 해봅시다.

 

  예를 들면 어느 백화점에서

 세일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하고

모르는 사람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내일 세일할 것인데 오늘 가서 값을 비싸게 주고 물건을 샀다면

손해를 본 것입니다. 세일이 30퍼센트였다면 30퍼센트 손해가 난 것이지요.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 본다면 지금 국제적으로

어떤 품종의 물건 값이 오른다 했을 때 그것을 미리 팔아버렸다면

손해를 본 것입니다. 조금 있다 팔면 이익이 더 많아질 테니까요.

이런 것이 나쁜 방향으로 흐르면 매점매석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째든 정보가 중요한데 상업 문화가 발달하면

바로 이 정보력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때 워털루에서 나폴레옹 군대하고 영국 군대하고

싸움이 붙은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요.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서 유럽의 역사가 뒤바뀔 판이었지요.

그런데 이 전쟁에서 영국군이 이긴 것을 제일 먼저 안 사람들은

그 당시의 왕도, 군 총사령관도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증권업자들이 승전 소식을 제일 먼저 입수했다는 것입니다.

  최초로 비둘기를 통신용으로 사용한 사람들이 이들이었는데

왜 이처럼 그들은 전쟁 소식에 관심이 많았을까요?

 

 영국이 전재엥 지면 증권이 하루아침에 폭락하는데

이겼을 때는 증권이 반대로 올라가니까

그 정보를 몇 분 전에 알아 증권을 많이 사놓았다 팔게 되면

앉아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정보의 가치를 가장 잘 아는 것이 바로 장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상업 문화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보의 유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것은

너와 나 사이에 오고 가는 것인데 이 오고 가는 것을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초에는 그건 말 그대로 길이었는데

그것이 추상적인 길이 되어서 전화도 되고 텔렉스도 된 것입니다.

 

이처럼 전화가 발명되고 길이 개척된 것은

전부 상업 문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뮤니케이션은 바로 상업 문화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정보를 얻는 기술이 뒤지면 낙후될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한국의 기없하는 사람들이 국제 기업 정보에

귀가 어두우면 나라 전체의 경제에 불이익을 끼치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두 번째가 기술입니다.

 이 기술이라는 것이 참 묘한데 예를 들어 반도체 같은 것을 보십시오.

우리나라도 반도체를 생산하지요. 이러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은

컴퓨터가 합니다. 컴퓨터라는 것이 바로 정보 체제입니다.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셔이 합쳐졌을 때는

엄청난 인간 개혁이 벌어집니다.

카트로닉스라는 로봇이 나오는데 그것은 전자 기술하고

보통 기계하고 합쳐진 것입니다.

  이렇게 날로 새로워지는 기술을 못 좇아가면 결국 상품을 만들 수가 없고

물건을 팔 수가 없게 되니까 기없의 세계는 시들어버립니다.

그러니까 기술을 개발해야 됩니다.

 

  세 번째는 창의성입니다.

장사라는 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인이란 반드시 아이디어가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블루진 바지라고 부르느 ㄴ청바지가

원래 해군들이 바다에서 입던 옷입니다.

바닷바람에도 쉽게 상하지 않는, 노상 험한 일을 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질긴 옷이 아니면 안 되지요.

  그런데 골드 러시gold rush 라고 해서 금광 붐이 일었을 때

금을 캐는 사람들 역시 질긴 옷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바다에서 입던 이 옷을 산에 가져다가 팔게 되었고

그것을 먼저 착안한 회사는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수부水夫들에겐 수부의 옷을, 광부들에게는 광부의 옷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롭게 판로를 연 것입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전기 다리미도 없고 해서

교복 바지에 주름을 잡고 매끈하게 다린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요 밑에다 바지를 넣고 자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줄이 두 개가 생길 때도 있어서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놀리기도 했는데, 우리는 이처럼 옷이라고 하는 것은

구겨지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구겨지는 것을 싫어하는데

오히려 이 구겨진 것을 멋으로 삼는 디자인의 옷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 여성들은 미리 구겨진 디자인의 옷을 입고 다닙니다.

아이디어란 이렇게 역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을 하나의 판박이로

'A는 A다, B는 B다' 라고 생각하지 않고

A가 B일 수도 있고 B가 A일 수도 있다는 역전 사상,

역전의 아이디어를 가져야 하는 것이 바로 기업인들의 사고력입니다.

그래야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아이디어, 정보, 기술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우리의 기업이 살아나게 되고 국제 경쟁을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막대한 투자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기업인들은 기술과 정보에 투자하기보다는

부동산 같은 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부동산은 가만히 있어도 가격이 오르니까 부동산을 사두었다가

기업이 안 되면 그 돈으로 기업의 결손을 메우려고도 하고,

또 욕심이 많은 사람은 기업으로 돈을 벌지 않고 부동산으로 벌려고도 하는데

그것은 참된 기업인이 아닙니다.

자기가 어떤 직종을 가졌다면 그것으로 돈을 벌어야지

다른 짓을 해서 번다는 것은 이미 기업 정신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부동산에 투자할 돈이 있으면 부동산 이율보다도 몇 배나 많이 올라가는

기술 투자를 해야 되고, 또 기술 개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상품 광고를 보면 '일본 기술 제휴했다' , '프랑스와 기술 제휴했다' 고

자랑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기술 제휴라면 창피해서 숨겨야 될 일 아니겠습니까?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하는 이야기가

"누구하고 기술 제휴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어야 하는 이야기라도 자기 것인 듯이 이야기를 합니다.

남의 것을 인용할 때도 될 수 있으면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이야기하려고 하지요.

 

  이게 인간의 본능인데 왜 기술 제휴라는 것은 선전합니까?

한국 기술을 소비자들이 믿지 않는다. 그

러니까 일본과 기술 제휴다, 프랑스 기술 제휴다 해서

국산품이라도 준準외국산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만,

기업인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은 자꾸 외국 물건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악순환만 거듭 됩니다.

결국 나라도 손해, 기업도 손해를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 기술이 상당한 위치에 이르렀는데도

국민들이 신임을 하지 않는 원인이 거기에 있습니다.

이러니 기술 개발이 되겠습니까?

소비자가 외국산을 자꾸 사는데 국산품에 기술 투자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보다도 수입해다가 파는 쪽이 마진이 훨씬 높은데

뭐하러 고생하면서 기술을 개발합니까?

  뉴스에 일본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무엇을 개발했다는 것이

나올 때마다 아주 속상하고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이런 공석상에서 이야기해서 안됐지만

내가 재벌급에 속하는 어느 기업인을 아주 좋지 않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사람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우리 기술로 제트엔진을 깎는다고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고 그것 하나로 내 마음이 상당히 가벼워졌습니다.

 

  기업인들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어떻게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다 할지라도 자기의 죄나 자기의 잘못을

 민족 앞에 또는 후대 사람 앞에 영예롭게 역전시키는

단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기업이 자기가 번 돈을 가지고 부동산 같은 땅을 살 것이 아니라

기술을 개발한다면 지금까지 돌을 던지던 사람이라도

모두 박수를 쳐줄 것입니다. 그 회사가 망한다면 국민이

전부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외국하고 축구 시합할 때 사람들은 1대 0, 2대 0으로 지면

마구 가슴을 치고 심지어 맥주 먹다 말고 맥주병을 깨뜨리고,

어느 나라에서는 흥분해서 권총으로 막 쏘기가지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기술하고 우리 기술하고 지금 축구 시합처럼

잠실 운동장에서 경기 한다면 몇 대 몇일 것 같습니까?

30대 0 정도입니다.

 

  늘 이야기하지만 나는 민족주의자는 아닙니다.

단지 문학을 하는 사람인데 이 문학이란 국경이 없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사람이지만

그의 작품을 읽으면 참 아름답고 좋습니다.

헤밍위에? 미국 사람이지만 작품들이 좋아요.

오로지 그들 작품의 좋고 나쁜 것을 느낄 뿐,

미국이 어디에 있고 러시아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처럼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국경이 없어요.

민족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시 한 줄, 그것이 문학인들의 세계요,

그들의 국적이지요.

 

  그런데도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가,

문학인이면서도 왜 지나친 국수주의자와 같은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사람의 피를 못 속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여러분들이 한국 사람들 어쩌고저쩌고 욕하다가도

외국인이 그와 같은 얘기를 하면 막 화가 나지요.

국내 팀끼리 게임할 때는 누가 이기든 상관없지만,

외국하고 시합을 하면 점잖던 사람도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곤 합니다.

나도 어떤 때는 텔레비전 앞에서 을원을 하다 보면 목이 쉴 대가 있어요.

 

  이것이 운동 경기가 아니라 우리 기업들이

한국 축구팀이나 한국 야구처럼 국제 경쟁에서 기술 경쟁을 하고

아이디어 경쟁을 하고 정보 경쟁을 해서,

우리가 어느 나라와 10대 0으로 졌었는데

 이번에는 10대 0으로 이겼다고 하면

박수 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 재벌들의 이름이 적어도 우리의 축구팀처럼, 차범근처럼

국민들에게 친숙해지고 익숙해 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다.

그러면 모두 응원해 줄 것이다. 기술이나 자본이나 정보가

국제적인 경쟁에서 이겨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 <젊은이여 한국을 이야기 하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