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있을 때, 주를 찬양하여 감사한 삶이 되시길(샬롬이)

**감동의 글

그대/베르나르 베르베르

샬롬이 2014. 3. 25. 02:35

 

 

 

 

그대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대가 이 페이지를 넘길 때,

 지면의 한 지점에서 그대의 집게손가락으로

종이의 섬유소를 문지르고 있음을 느껴 보라.

그 접촉에서 미세한 가열이 일어난다.

지극히 미약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무한소로 수량화되는 이 가열 때문에 전자의 갑작스런 움직임이 생겨난다.

전자는 원자를 떠나 다른 입자와 충돌한다.

 

그런데 이 입자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주 거대한 세계일 수도 있다.

그 입자가 전자와 충돌한 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격변이다.

충돌이 있기 전까지 이 입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차갑고 공허했다.

그러다가 그대가 페이지를 넘김으로써 위기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지면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그 동작으로

그대는 어떤 중대한 일을 야기했다.

이 일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것인가?

그것에 관해서 그대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극미한 세계들이 생겨나고

거기에 사람과 비슷한 존재들이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들은 제련 기술과 증기로 찌는 요리법과 우주여행을 생각해 낼 것이고,

우리보다 더 지능이 높은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이 책을 펼쳐 들지 않고 그대의 손가락이 지면의

한 지점에 마찰열을 가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우리 우주 역시 지극히 거대한 어떤 책의 지면 한 구석이나

어떤 구두의 밑창, 또는 어떤 거대한 다른 문명의 맥주 깡통에 묻은

거품에 자리를 잡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세대는 아마도 우리가 어떤 무한소와 어떤 무한대 사이에 있는지를

확일할 방법을 찾아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우리 우주는, 아니 우리 우주를 담은 입자는

텅비어 있었으며, 차갑고 어둡고 고요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가 위기를 야기하였다.

누군가가 책장을 넘긴 것이든 맥주 강통의 거품을 닦은 것이든,

일종의 <깨어남>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대로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폭발,

즉 빅뱅Big Bang이었다.

 

그렇다면 정적에 싸여 있던 그 방대한 우주가

어떤 어머어마한 폭발 때문에 갑자기 깨어나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저 위에서 왜 누군가가 페이지를 넘겼을까?

왜 누군가가 맥주 거품을 닦았을까?

어쨌거나 그 깨어남이 있었기에 그대가 이곳에서 이 책음 읽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온갖 것이 나타나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대가 이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무한소의 어딘가에 새로운 우주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대 알고 있는가?

그대의 힘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