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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나라

늙은 갈대의 독백(獨白)/백석(白石)

샬롬이 2012. 11. 6. 12:44

 

 

 

 

 

 

늙은 갈대의 독백(獨白)

 

 

 

 

 

/백석(白石)

 

 

 

 

 

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야 잠이 든다

물닭도 쉬이 어느 낯설은 논드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때 우리는 섧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보름밤이면

갈거이와 함께 이 언덕에서 달보기를 한다

강(江)물과 같이 세월(歲月)의 노래를 부른다

새우들이 마른 잎새에 올라 앉는 이 때가 나는 좋다

 

 

 

 

어느 처녀(處女)가 내 잎을 따 갈부던 결었노

어느 동자(童子)가 내 잎닢 따 갈나발을 불었노

어느 기러기 내 순한 대를 입에다 물고 갔노

아, 어느 태공망(太公望)이 내 젊음을 낚아 갔노

 

 

이 몸의 매딥매딥

잃어진 사랑의 허물 자국

별 많은 어느 밤 강을 날여간 강다릿배의 갈대 피리

비오는 어느 아침 나룻배 나린 길손의 갈대 지팽이

모두 내 사랑이었다

 

 

해오라비조는 곁에서

물뱀의 새끼를 업고 나는 꿈을 꾸었다

 

- 벼름질로 돌아오는 낫이 나를 다리려 왔다

달구지 타고 산골로 삿자리의 벼슬을 갔다

 

 

 

 

 

 

****************

 

갈거이: 옆으로 기어가는 게.

정주에서는 가을에 나오는 게를 말하며 봄에는 '칠게'라고 한다.

둘 다 바다 게로 갈게는 등껍질이 아주 매끈매끈한 게로 칠게 보다는 크다.

갈부던: 갈잎으로 엮어 만든 장신구.

갈잎 세 개로 서로 엮어 가운데는 빈 공간으로 된 두툼한 갈잎 덩어리.

또는 그렇게 복잡하고 얼기설기한 정경.

입닢 : 대롱이처럼 구멍이 있는 줄기닢.

태공망 :중국 주(周) 나라의 재상인 태공망이 낚시질을 즐겼다는 데서

'낚시질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매딥매딥 : 마디마디.

날여간 : 내려간.

나린 :내린.

벼름질 :무디어진 소붙이 연장을 불에 달구어 두들겨 날카롭게 하는 행위.

주로 낫과 같은 날카로운 연장을 만드는 데 벼름질이 많이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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