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미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시의 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탕약(湯藥) /백석(白石) (0) | 2014.12.09 |
---|---|
해질녘의 단상 6 /이해인 (0) | 2014.12.06 |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용혜원 (0) | 2014.12.04 |
화염 경배/이면우 (0) | 2014.12.03 |
작은 것을 위하여/이기철 (0) | 2014.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