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의 장
/W. 워즈워드
한땐 그대의 이웃이었다.
험한 바위되어 솟은 피일고성(古城)이여!
여름철 4주일을 그대 보이는 곳에 자리하여
하루 하루를 그대 바라보며 살았거늘
그대 모습은 언제나 유리같이 잔잔한 바다 위에 잠들고 있었노라.
하늘은 그토록 맑고, 대기는 그토록 고요했고
잇따르는 하루하루가 또한 그러했었다.
내 볼 적마다 그대의 영상 여전히 거기에 있어
물결 위에 떨리듯 해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었다.
빈틈 하나 없던 그 고요! 그것은 잠들어 있음도 아니고
계절따라 오가는 기분도 아니었다.
나는 강대한 바다야말로 만물 중에서
가장 유순한 존재일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아아, 그때(네 동생 살아있을 때) 나의 손은 화가의 손이 되어
내 본 것을 옮기고 거기에
바다에도 땅에도 일찌기 없었던 엷은 섬광과 봉헌과
시인의 꿈을 더할 수만 있다면.
이 그림과는 얼마나 다른 세계 속에
그대 고색창연한 바위더미를 옮겨 놓았을 것인가!
미소 짓기를 그칠 수 없는 바다 곁에,
천복(天福)이 자욱한 하늘 아래, 고요에 잠긴 땅 위에.
그대는 평화로운 세월 속에 거룩한 보고(寶庫) 되고
하늘나라의 역사 되어 보이고
일찌기 빛난 그 모든 햇빛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햇빛이 그대에게 주어졌으리.
그것은 영원한 안식이 깃들인 그림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엔 고역과 싸움을 떠난 낙원의 고요가 있고
움직이는 물결과 미풍과 묵묵한 자연의
생명어린 숨결밖엔 움직이는 것 다시 없다.
내 마음속 부질없는 환상으로
그 같은 그림 그때라면 그렸으리
그 그림 구석구석에 진리의 넋을,
이길 수 없는 견실한 평화를 보았으리.
한때는 그럴 수도 있었거늘 - 지금은 이미 지나간 일
이제는 새로운 지배에 얽매여 있다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힘은 가버리고
하나의 깊은 고뇌 나의 넋을 사람되게 하였노라.
이제는 한 순간도 웃음짓는 바다 볼 수 없고
지나날의 내가 될 수도 없느니
모두를 잃은 이 아쉬움 가실 날이 없으리
내가 아는 이 한 마디 차분한 마음으로 말한다.
이토록 애절하게 그리는 내 동생 아직 살아 있었다면
그의 친구 되었을 그대여!
그대의 이 그림을 내 탓하지 않고 찬양하노라
여기에 성난 바다와, 저기에 음산한 기슭을.
오, 이 불타는 작품이여! 슬기있고 솜씨 뛰어났도다.
여기엔 잘 가려낸 정기 서리고
저기엔 무서운 파도에 시달리는 육중한 배,
수심 젖은 이 하늘, 이 공포의 장관이여!
여기 장엄하게 서 있는 그 거대한 성,
그 성의 늠름한 모습을 내 즐겨 바라보노라
느낌이 없는 그 옛적 투구에 싸여
번개와 거센 바람과 짓밟는 파도를 두려워 않는 그 모습을.
잘 있거라, 동족에서 멀리 떨어져
꿈속에 잠겨 홀로 사는 마음이여, 잘 있거라!
그 같은 행복은 그 어디서나 누릴지라도
측은한 것, 그것은 눈먼 것이어라.
그러나 내 반기리, 불굴의 정신과 웃고 견디는 마음을
앞날에 자주 태어날 하나하나의 정경을
내 모두 반기리 - 앞에 펼쳐진 이 정경, 이보다 못한 것들도
우리 괴롭고 비통해도, 절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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