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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샤콘느>에 대하여/유재원

샬롬이 2012. 12. 27. 09:16

 

 

 

 

 

바하<샤콘느>에 대하여

 

 

 

/유재원

 

 

 

D단조에서 D장조로 다시 D단조로 이어지는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연주시간이 약 15분 정도로 규모면에서도 대곡이라 하겠다.

이 작품은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최고봉에 위치한 걸작으로

바이올린이란 하나의 악기를 통해

 작곡가의 웅장한 내면세계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흔히 헨델의 음악은 '원심적'이고 바하의 음악은 '구심적'이라고 했던가.

깊게 천착할수록 더욱 거대한 내면세계가 엿보이는

바하의 음악적 특색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들으면 들을수록 바하의 구심력에 이끌려 그의 정신세계에 빨려들게 된다.

특히 독주 바이올린이면서도 두 대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더불 스톱핑(Doppel griff)이 쓰여

 더욱 풍부한 바이올린 음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다른 작곡가들과 달리 '아버지' 바하가 줄 수 있는 선물이기도 하다.

 

 

바하를 연주하는 신동, 얏사 하이페츠

 

  앗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 1901. 2.2~1987.12.10)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 3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하여 7세에 데뷔하고

20대에 이미 바이올린의 제국을 구축한 겁 없는 러시아 청년이었다.

이 신동은 성공 콤플렉스에 빠진 아버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엄한 훈육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러시아 바이올린계의 당대 최고 거장이었던

아우어(Leopobl Auerl, 1845.6.7~1930.7.15)에게

다시 넘겨져 음악 엘리트 훈련을 받았다.

17세 이후 미국에 정착했고 그의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세계 방방곡곡을 돌며  순회연주로 이후의 남은 생애를 보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이처럼 간단하지 않다.

밋샤 엘만이나 나탄 밀슈타인, 에디 브라운 등

그의 동문 연주자들도 활동하고 있었으나

점차 그들의 하이페츠의 라이벌에도 끼지 못하게 되었고

당대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들도 이 무서운 신인을 두려워 했다.

하이페츠는 이미 바이올린 연주자 레이스에서

독주를 하고 있었고 젊디젊은 지존이었다.

그의 연주는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녔으며 많은 신화를 낳았다.

그의 연주는 무척이나 분명한 음색을 강조했고 꼼꼼한 음 처리에 특색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선이 굵은 연주를 들려주는 거장의 풍모를 보여주었고

청중의 박수나 환호는 무시하기 일쑤였다.

 

  때론 그의 연주가 완벽에 지나쳐 차갑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하이페츠를 '차가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까닭은 그의 정교한 손놀림 때문일 것이고,

누군가 그를 가리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차가운' 사람일고 한다면

이는 그의 음악이 언제나 음악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본능과 같은 분석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또 누군가가 하이페츠를 '차가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다. 그는 차가운 사람이다'라고 말해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처럼 자신의 감정을 탁월하게 조절하는

음악가를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이페츠는

연주회 분위기나 자신의 몸 컨디션이 어떻든

크게 연연해하지 않았으며 항상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언제나 그는 평론가들이나 청중의 평가에 얽매이는

쇼맨십도 없었고 그의 표정과 자세는 딱딱했다.

그는 장난치기 좋아하는 순수한 면도 있었으며

연주회를 앞두고는 마치 콩쿠르를 앞둔 학생처럼 연습에 몰두하는 연주자였다.

   그는 항상 많은 음악 팬들에게 한 치의 허튼 모습도 보이지 않는

완벽주의자의 전형을 각인시켜준 위대한 연주자였음에 틀림없다.

 

  하이페츠는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모두 평균 이상의 뛰어난 해석을 보여주었으며

그러한 하이페츠가 특별히 비중을 두고 있는 작곡가는 없었다고도 하겠다.

그런데 하이페츠가 말년에 바하 연주에 천책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말년에 순회 연주를 하면서 바하의 음악을 레퍼토리로 즐겨 넣었으며

말년의 녹음도 바하의 곡이 많다.

 그는 갑자기 바하에게 어떤 공감대를 느끼게 된 것일까.

천재로서, 아버지로서 한번의 외도 없이 평생을 음악에 바치며

성실히 살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닮아 있다.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들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놓고 살 수 없는 고독한 존재였으며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았다.

하이페츠는 노년에 들어 아버지가 느끼는

인생의 처절한 외로움을 절감한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