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처럼 생각이 울려왔으면
/이어령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책장 한구석에 작은 종 한 쌍이 놓여 있다.
우연히 눈에 띄어 무심토 흔들어 보았더니 뜻밖에도 투명한 소리가 난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으로 매다는 종인 줄로만 알았는데
무슨 금속 같은 것에 도금한 진짜 종이었던 것이다.
높은 소리를 내는 것이 은종이고, 조금 낮은 소리로 울리는 것이 금종이다.
별로 눈여겨본 적도 없던 것이 소리를 내는 순간
무엇을 발견했을 때와 똑같은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소리는 먼지 속에 감춰져 있었던 것일까.
내 손이 닿기 전까지 그것은 하나의 돌멩이와 같은 존재였거나
아니면 한 번도 존재해 본 적 없는 그냥 텅 빈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금 목숨을 지닌 새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환한 대낮 속으로 날고 있다.
아니다. 그것은 양 떼이고, 구름이고, 바람소리다.
높고 낮은 은종과 금종을 번갈아 흔들었을 때 들은 것은
40여 년 전 알프스 고원을 지날 때 듣던 바로 그 소리였던 것이다.
양떼의 방울소리였다. 초원의 구릉을 따라 구름 모양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양 떼들의 방울소리- 수백, 수천의 방울소리가
바람을 타고 멀리에서, 아주 가까이에서 울려 왔다.
어느 순간에는 천상에서 쏟아지는 빗바울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차를 세우고 녹음했다. 사람들은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지만
나는 처음 듣는 낯선 소리들 그리 영영 사라지고 마는
순간의 소리들을 잡기 위해 당시로서는 아주 환상적으로
작은 녹음기('도코다'라는 상표로, 홍콩에서 산 것이다) 하나를 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아와 테이프를 돌려 그 방울소리를 다시 틀어보니
바람소리의 잡음만이 가득 들어 있고
풀 냄새나던 그 맑고 투명한 알프스 초원 양 떼의 방울소리는
옛날 사진보다 더 색이 바래 있었다.
분명 그 순간의 소리들은 그렇지 않았다.
양들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목에 걸린 방울들은 생생한 소리를 냈다.
걷는 리듬에 따라 혹은 풀을 뜯으려고 고개를 숙이는 그 식욕의 음정에 따라
양들은 제각기 높낮이가 서로 다른 방울소리들을 냈다.
그것이 한데 어우러져 공기가 되고, 바람이 되고,
물방울이 되고, 수정 구슬이 되어 굴렀다.
풀냄새처럼 향기로운 음악이었다.
음식을 먹는 일이 그렇게 아름다운 방울소리가 되어 울린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 되었을까.
우리의 생명의 목에도 그런 방울이,
그런 종이 달려 이따금 소낙비처럼 쏟아진다면
우리 일상의 노동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이 되었겠는가.
시인 청마(靑馬, 유치환)는 <깃발>이라는 시에서
맨 처음 공중에 깃발을 단 사람이 누구인가를 묻는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맨 처음 종을 만들어
울릴 생각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묻고 싶다.
종은 육체이고 숨소리는 영혼이라는
진부한 아날로지(analogr:유추) 때문이 아니다.
내가 오늘 아침 우연히 작은 종을 흔들어
그토록 투명한 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 놀랐듯
처음 종을 만들어 그 소리를 들은 사람도 그렇게 놀랐을 것이다.
지금까지 책장 한구석의 먼지 속에서 침묵하던 소리.
흔들어주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그 맑은 소리.
더 이상 의미를 붙이지 말자.
종은 침묵하지만 그 안에 수많은 소리를 담고 있다.
우리 육체의 욕망들처럼, 풀을 뜯는 양 떼의 불타는 식욕처럼 말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는
존 던 John Donne 의 기도서에 나오는 산문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 존 던은 시보다 아름다운 산문을 썼다).
이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존 던의 기도서가 아니라
누구나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의 소설
그리고 그 영화를 생각하게 한다.
헤밍웨이가 소설을 다 쓴 다음 거기에 합당한 소설 제목을 찾다가
우연히 존 던이 쓴 이 구절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존 던의 그 말들은 벼락처럼 그의 머리를 쳤다.
많은 사람들은 이 종소리를 무슨 축제의 종이나
일상적으로 울리는 종소리로 착각한다.
하지만 존 던의 그 종bell은 조종弔鐘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누군가 죽으면 마을 전체에 그의 죽음을 알리는
교회당의 종소리가 울린다.
릴케의<말테의 수기>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옛날에는 하잘것없는 사람의 죽음이라고 해도
죽음은 장엄하고 엄숙한 사건이어서 가장 큰 뉴스거리였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조종을 울렸으며,
사람들은 그것이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를 궁금해한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죽은 자를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고개를 숙여 슬픔을 표시한다.
그러나 존 던은 말한다.
그것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 종소리인가를 묻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한 종소리, 내 죽음의 조종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도 완전한 섬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홀로 있는 섬이 아니다. 아무리 홀로 떨어져 있으려고 해도
인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섬이 아니다. 나는 대륙의 일부이다.
아무리 작은 모래나 흙덩이라고 해도 그것은 광활한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존 던은 말한다.
"바다에서 휩슬려가면 그만큼 대지는 가벼워지고 작아진다"고......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에서
로버트 조던은 왜 스페인 내전에서 죽었나?
그러니까 누가 죽는다는 것은 바로 내 크나큰 생명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그의 죽음은 바로 나의 죽음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자신을 섬이 아니라 대륙으로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은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라고.......
누군가 죽는다는 것은 내 대륙 안의 모래가,
흙이 바다로 휩쓸려 떨어져간다는 의미다.
그의 고통은 나와 무관하지 않고,
그의 생명은 나와 똑같은 맴물에서 흘러온 것이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왜 미국의 젊은 청년 로버트 조던은 그와 관계도 없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죽어야만 했는가.
그 제목이 소설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아니 종처럼 울리게 한다.
"침묵하던 소리를 듣고 싶다"
서양 사람들은 방울도, 종도 다 같이 벨bell이라고 부른다.
방울이나 종이나 크기가 다를 뿐 서양 것은 그 안에 소리를 울리는 장치가 있다.
말하자면 공이가 내부에서 때려 소리를 낸다.
하지만 동양의 에밀레종 같은 한국의 범종은 밖에서 공이로 쳐야 한다.
몸음 흔들어줘야 소리를 내는 서양종과 달리 한국의 범종은 움직이지 않는다.
한 자리에 매달려 가만히 그리고 무겁게 그냥 드리워 있다.
그것이 안에서 울리는 것이든 밖에서 울리는 소리든
우리의 모든 사고는 종소리처럼 울린다.
그러나 혼자서는 울리지 못한다.
소설을 다 써 놓고도 헤밍웨이는 그 소설에 제목을 달지 못했다.
그러던 중 존 던이 쓴 기도서의 한 구절이 그의 소설의 언어를 흔들어 준다.
인물과 이야기와 모든 배경의 풍경들을 종소리로 울리게 한다.
이 행복한 우연.....헤밍웨이는 수백 년이나 떨어져 산 존 던과의 만남으로
그의 소설이 종이 되게 한 것이다.
무엇인가가 내 몸을 흔들어주지 않고는,
누가 밖에서 공이로 때려주지 않고는
내 안에 고여 있는 생각의 소리를 울릴 수 없다.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더 이상 이 이야기에 긴 설명을 붙이지 말자.
설명할수록, 의미를 붙일수록 글은 길어지지만 그 의미는 줄어든다.
백지에 가득 찬 의미를 죽이기 위해 사람들은 검은 문자들로 채운다.
그 공백의 의미를 허물어 버린다.
백지 가득 고여 있는 그 의미를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우연히 흔든 그 종소리처럼
내 육체에서도 침묵하던 소리들이 울려 왔으면 좋겠다.
섬이 아니라 열도列島처럼 섬들이 하나로 이어진, 그런 점 같은 것.....
대륙에서 막 떨어져 나온 작은 모래같이 외로운 것을 견디기 위해
그런 생각들을 글로 쓰고 싶다.
내 컴퓨터의 키보드에서 오늘 아침 우연히 듣던 그런 방울소리,
종소리가 울려왔으면 좋겠다.
바람소리밖에는 남지 않았던 알프스 고원 양 떼들의
방울소리를 담은 테이프를 찾아 리와인드하고 싶다.
아직도 어는 구석엔가 맑은 소리를 감추고
내 손이 닿기를 기다리는 작은 종들이,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이 아니라
진짜로 흔들면 울리는 금종.은종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안에서도 치고, 밖에서도 치는 종처럼 생각이 울려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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