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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늑대가 되어라/정영진<리더십 박사>

샬롬이 2012. 11. 8. 04:55

 

 

 

 

 

외로운 늑대되어라

 

 

 

/정영진<리더십 박사>

 

 

한 사람이 하는 일은 그의 삶이 되고,

그의 운명이 된다. 이것은 삶의 법칙이다.

-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

 

 

 

  동물 중에 늑대는 잔인하기로 유명하다.

한 번 공격목표를 정하면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입에 문 것은 이발이 부러져도 놓지 않는다.

이런 늑대에게도 사냥의 성공률은 20분의 1 정도라고 한다.

하루에 스무 번 정도 사냥에 나서면 열아홉 번은 실패하는 것이다.

그래도 늑대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나선다.

성공하려면 늑대가 되어야 한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의 태도로는 이루어지는게 없다.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무서운 집념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1519년 미국의 코르테즈 장군은 멕시코 정복의 꿈을 안고

열한 척의 배에 700명의 병사들을 태웠다.

이렇게 적은 수로 멕시코를 정복한다는 것은 보통 각오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르테즈 장군은 비장한 각오로 멕시코의 베라쿠르즈 항구에 도착했다.

누가 봐도 이 전쟁은 순박한 양이 호랑이 굴 속으로 뛰어들어간 것과 같았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코르테즈 장군은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타고 온 배 열한 척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칠백 명의 군사들은 생각했다.

  "더 이상 우리는 돌아갈 길이 없다. 사는 길은 오직 이기는 것뿐이다.

   지면 죽는다. 승리가 생명이다."

병사들의 눈에는 불이 튀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었다.

그들의 싸움은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다.

  목숨 걸고 출발한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을 누가 당하겠는가?

 

광야 한복판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400년 동안 종으로 살아온 이스라엘 노예들과 전문적으로 군사훈련을 받고

전쟁으로 생존해가는 아말렉 군사들 간의 싸움이었다.

당연히 아말렉 군사들이 노예들을 이겨야 한다.

그러나 맨손으로 나선 노예들이 칼과 창으로 무장한 아말렉 군사를 무찔렀다.

이유가 무엇인가? 목숨 걸고 싸운 전쟁이 아닌가.

아말렉 군사는 먹고살기 위해서 싸웠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전쟁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야 하는 생명의 문제였다.

이것은 고양이가 사자를 이기고 양이 늑대를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인생이라는 게임은

 능숙한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툴지만 목숨 걸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 레슬리(H. T. Leesley) -

 

 

  죽을 병에 걸려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환자가 교회에 나왔다.

가진 재산이라고는 방 한 칸 달린 움막집이 전부였다.

아내가 식당에 나가서 번 돈으로 어린 아이 둘과

고생고생하며 딱하게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한 번 사는 세상인데 어쩌다가 병들어 처참하게 죽어가야 한다는 말인가?

병들어 죽지 않아도 세월이 가면 모두 늙어 죽어갈 텐데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게 사다가 떠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불쌍한 마음에 가슴이 저려왔다. 사는 길은 없을까?

기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무슨 말이 들리겠는가?

 

 나는 죽어가는 환자를 데리고 금식기도원으로 들어갔다.

이틀이 지났는데 나아지기는커녕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은근히 겁이 났다 모 전도사가 기도로 사람 고친다고 하다가

사람 죽였다고 소문이라도 나는 날이면 나 역시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바로 내 운명을 결정짓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이라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서 그냥 내려가면 나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어 내려가든지 아니면 환자를 살려서 내려가든지 둘 중에 하나였다.

 

  무더운 여름날 단식하며 기도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양치물이라도 꼴깍 마시고 싶은 갈증을 견디며

울고 싶어도 울 기력이 없으 때까지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살리고 싶었다.

사람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사는 길이라서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리라.

하나님은 사람의 의로움이나 선함이 아니라 불쌍함에 응답하신다.

내가 나를 보아도 딱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어떠했겠는가?

 

  기도를 시작한 지 며칠째 되던 날 저녁 무렵,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는 그를 업어 화장실에 데려다주었다.

두 시간 이상을 앉아 싸고 토하고 야단법석이었다. 저러다 죽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과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아마 오고가는 사람들이 혀를 찼을 것이다.

  "젊은이가 안 됐다. 뒷간 귀신 들린 모양이야."

그런데 이것이 소망 없이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한참 후에 화장실에서 어거주춤 나오는

그의 평화로운 미소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오늘 아니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화장실 문 앞에서 울부짖게 만드신 하나님의 뜻은 도대체 무엇일까?

세상을 살며 목회를 하면서 조금씩 깨달음이 오는 것 같다.

암이 깨끗이 나은 그는 지금 장로로 세움을 받아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일찍 그만두기 때문에 실패한다.

웰치(C. E. Welch)

 

 

열두 해 동안을 피를 쏟으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가련한 여자의 이야기가 신약 성경 마가복음 5장에 기록되어 있다.

죽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한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에라도 손끝을 대면 나으리라는 간절함이 있었다.

여인은 드러내기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몸을 이끌고

군중 속을 헤집고 나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

이 순간 여인의 병마는 개끗이 치료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능력은 그 여인의 도덕성이나 선행을 통해서 흘러들어오지 않았다.

불타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처절함이 기적을 불러일으킨다.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견딜 수 없는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타들어가는 갈증이 일어나야 한다.

성공하는 리더가 되고 싶다면 외로운 늑대가 되어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성공은 그 사람이

현재 오른 위치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극복했는가로 평가된다.

- 부커 워싱턴(Booker T. Washing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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